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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16. 2023

환자한테 혼난 날

 출동 중엔 종종 지령이 바뀌기도 한다. 경증이었던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원래의 사고에 더해 추가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다. 그날 밤은 고속도로 출동이었는데, 단순한 접촉사고만 발생하고 구조상황은 없다고 지령이 내려와서 마음을 놓았다. 차가 시속 100킬로를 넘나들며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사고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드레일 바깥으로 몸을 피했다. 그럼 대부분 안전했다.


 어? 뭐야.

 예?

 지령 바뀌었어. 2차 사고 났다는데?

 예?

 고속도로 2차 사고는 무섭다. 맨 몸으로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차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서 돌아가다가 사고지점을 못 보고 달려드는 차에 부딪히거나, 아니면 사고 직후에 겁에 질려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겨우 맘을 먹고 문을 여는 순간 달려오는 차와 추돌하기도 한다. 그러면 예외 없이 죽었다. 이날도 그래서 지령이 바뀌는 걸 보자마자 뒷머리가 쭈뼛쭈뼛 솟았다. 새카만 밤의 고속도로 2차 사고였다. 조졌다, 조졌다, 조졌다, 조졌다. 그 생각 밖에 안 났다.


 현장에는 사고차량 두 대와 몰려온 렉카들, 경찰차, 도로교통 공단에서 통제를 위해 보낸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차에 탔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가드레일 바깥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 둘은 엄마와 아들이었는데, 아들 쪽이 통증 때문인지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2차 사고 났다는 분이 이 학생이에요? 묻자, 여기저기서 그렇다고 답이 돌아왔다.

 어쩌다 그랬어요?

 걸어가다가요. 학생이 답했다.

 어딜 걸어가요?

 저 쪽. 학생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앞의 터널이었다. 다른 손에는 귀퉁이가 박살 난 휴대폰이 생명줄처럼 붙들려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고개를 처박고 유령처럼 터널 안쪽에 난 좁은 갓길을 걷는 학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행히 달려오는 차 백미러에(물론 그것도 엄청난 충격이었겠지만) 스쳤을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무릎에 부목을 대고, 경추 보호대를 적용한 뒤 긴척추고정판을 이용해 학생을 구급차로 옮겼다. 학생의 어머니도 보호자 겸 환자로서 함께 구급차를 탔다.


 한참 전에 있었던 다른 출동이 떠올랐다. 네 가족이 탄 차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고, 그중 한 사람이 2차 사고로 사망했다.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서 처음엔 사망한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병원에 실려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누가 죽었는지도 몰랐다. 최초 추정은 40대 남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의 덩치 큰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가 차 밖으로 나오는 걸 도와주려다 죽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이번에 사고가 난 학생은 목숨을 건진 게 천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다행이요? 지금 이게 다행이에요? 학생 어머니가 쏘아붙였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 그게 아니라.

 지금 다행이라고 하셨잖아요!

 죄송합니다.

 뭐 하는 사람이야, 진짜.

 죄송합니다.


 이날 이후로 다행이란 말은 나에게 구급차내 금기어가 되었다. 뭐든 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벗겨지지 않고 까져서, 잘리지 않고 찢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란 말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새는 그냥 속으로만 뇐다. 이만하길 참 다행이라고. 굳이 덧붙이자면 그건 당신의 삶이 장애나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안도하는 어떤 마음의 소리다. 그 나름 애틋함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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