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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14. 2023

화수분

 화장실만 한 방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방 안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현관문을 열어 두니 연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방 안을 제대로 살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구겨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옷가지 중엔 반팔이 없었다. 담배 연기로 누렇게 달뜬 벽 위로 두터운 패딩 잠바 몇 벌이 보물처럼 가지런했다. 침대 곁엔 다 먹은 컵라면 용기와 부셔먹다 만 컵라면과 포장이 뜯기지 않은 컵라면이 굴러다녔다. 출입구 맞은편 벽의 왼쪽 구석은 새카만 꽃의 군집인 양 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와 컵라면만 먹고사는 남자는 다리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신발, 버꼬. 남자의 어머니가 어눌하게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들것으로 옮기기 위해선 신발을 신어야 수월하다. 신발 신고 들어갈게요. 미리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대개 그러세요 하고 얘기를 하는데 남자의 어머니는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선수를 쳤다. 신발, 버꼬. 그 말이 내 마음 밭에 흙발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 밭은 한 뼘 여유 없는 해진 밭이리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 벗고 들어갈게요. 안심시키듯 말하며 싱긋 웃었다.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남자는 송장처럼 말랐다. 들것에 옮기는 동안 뒤치니 몸에서 썩은 재떨이 냄새가 났다. 남자의 몸 자체가 다 타버린 큰 담배꽁초 같았다. 꽁초 같은 남자는 쉬이 들렸다. 남자를 출입구로 옮기는 동안 발에 무언가 걸리더니 와라라락 하고 쓰러졌다. 소주병들이었다. 못해도 스무 개는 될 것 같았다. 좁은 방 안을 굴러다니며 저들끼리 부딪혀서 땡 땡 땡 청명한 소리를 냈다. 병 부딪는 소리가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술병은 모여서 동전이 되고, 동전이 모이면 다시 새 술이 될 것이었다. 화수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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