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Jun 21. 2023

나이스 타이밍에 익절한 친구

 나보다도 술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렇다고 막 세진 않아서 두 세 병 들어가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종종 길바닥에 누웠다. 그러면 파출소에서 얘 좀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다. 친구를 업다시피 해서 집에 데려가면 늘 친구의 어머니가 반겨 주셨다. 분노와 미안함이 뒤섞인 오묘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저 혼자 술을 먹는 거면 괜찮은데 문제는 나와 함께 마실 때였다. 한두 잔은 말만 좀 많아지고, 한 병이 넘어가면 사람이 변했다. 손에 닿는 건 뭐든 때려 부수려고 했다. 밖에 세워둔 단란주점 입간판을 주먹으로 박살내고, 문 닫은 가게의 셔터를 걷어차서 찌그러뜨렸다. 함께 걸어가다가 앞에 사람이라도 다가오면 자꾸 어깨빵을 놓으려고 해서 쉴 새 없이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다 어디 주먹질할 데가 없으면 결국 나에게 말했다.

 싸우자.

 미친놈.

 참다 참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엔 하도 싸우자고 달려들어서 원대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다음 날, 친구는 전날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소방서에 터를 잡고 가정을 챙기기 시작한 이후로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건 지금의 내 인생을 기준으로 본다면 '손절이 아니라 익절'이었다. 그것도 딱 전고점을 찍은 직후의, 아주 나이스한 타이밍이었다.




 자정쯤 도시 외곽의 캠핑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만취한 남자 둘이 주먹다짐을 했단다. 현장에는 경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한 남자는 입술이 터졌고, 다른 남자는 코를 맞았는지 인중에 끈끈한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거즈에 생리식염수를 묻혀 대강 닦아냈다. 피는 오래전에 멎은 것 같았다.


 두 분, 병원 가서 진료 보시겠어요? 혹시 모르니까.

 괜찮아요. 돈도 없는 새끼 기껏 데려왔더니.

 뭐 이 새끼야?

 뭐긴 뭐야 이 거지새끼야.

 당장이라도 2차전을 재개할 모양새라 경찰이 급하게 둘을 떼어 놓았다. 두 사람은 인터넷 낚시 동호횐가 하는 곳에서 알게 되었고, 온라인상에서는 일단 죽이 맞아서 함께 캠핑을 왔다고 했다. 정황상 둘 중 한 사람은 돈이 많고 다른 한 사람은 넉넉하지 않은 듯했는데, 돈 많은 쪽이 없는 쪽을 깔보다 싸움이 났는지 반대로 없는 쪽이 많은 쪽에 대고 비아냥 거리다 일이 터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여하튼 급조된 두 남자의 우정은 그걸로 일단락되었다. 다소 꼰대스러운 생각이지만, 인터넷으로 사람 사귀는 게 이렇게 부질없다. 온라인에서 형님 아우 오빠 동생 하다가도 오프라인에선 가려지지 않는 서로의 본색 때문에 멱살잡이가 일어난다.

 두 사람 모두 병원이송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송거부확인서를 각각 작성하고 본부에 짧게 무전했다. 환자 상태 경미하고 병원이송 원치 않아 현장처치 후 미이송 귀소 출. 그렇게 경찰에게 상황정리를 맡기고 센터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퇴근 직전에 어제 만났던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두 남자 중 하나가 오늘 새벽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참고용으로 전날 작성한 구급일지를 전송해 달라고 부탁했고, 상황에 따라서 경찰서로 출두해 조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술 때문에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된 이날,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그 친구가 떠올랐다. 너도 나처럼 나이를 먹었을 테니 퍼먹던 술도 좀 줄었을까, 가정과 직장과 금쪽같은 네 새끼도 함께여서 개 같았던 버릇은 이제 개 줬을까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오랜만에 한 번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이스 타이밍에 익절했지만, 속는 셈 치고 조금만 거래를 틀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못된 건 아니었다. 늘 술이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