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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26. 2023

거짓은 영원하다

 아이는 울며 길을 걷는다. 뙤약볕이다. 엄마. 어떡해. 엄마. 우리 엄마. 운다고 마른 길이 젖어 시원해질 일도 아닌데 아이는 마냥 운다. 펑펑 솟는 눈물을 팔등으로 훔치고, 길을 걷다 다시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면 또 눈물을 훔치고 걷는다. 엄마. 아프지 마. 엄마.

 엄마 아빠가 일하는 사진관이 가까워질수록 눈물은 더 많아진다. 심장이 붉은 피 대신 투명한 액체를 펌프질 해서 눈알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사진관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팎으로 잘 보인다. 도착은 했는데 문을 열 자신이 없다. 바깥에서 어깨만 들썩이는 아이를 엄마가 발견한다. 뛰어나온다.

 왜 그래, 아들.

 엄마, 많이 아파?

 응?

 많이 아파?

 아니. 엄마 괜찮아. 누가 엄마 아프다 그랬니?

 응. 친구가 그랬어. 엄마 아프다고.

 아냐. 그래서 놀라서 왔구나.

 응.

 엄마 괜찮아.

 정말이지.

 응.

 남은 눈물이 온몸으로 뻗쳐서 아이는 꼭 기절할 것 같다. 안심했지만 크게 상처가 남는다. 아이는 커서 우연히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한다. 의사가 되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다. 아이는 문득 궁금해진다. 거짓의 무게를 지고 잘 사는 방법은 뭘까. 머리가 잘 돌아가면 되나. 아니면 그걸 아예 거짓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되나. 그러면 거짓도 참이 되는 건가.




 동트기 직전 시퍼런 새벽이었다. 전신주를 들이받은 차에서 불길이 솟구쳐 변압기까지 번졌다. 한전에 연락해서 주변 전력을 차단했다. 펌프차가 폼(foam)을 섞어 방수하자 불길은 금세 잡혔다.

 차 안에도, 화재현장 주변에도 사람은 없었다. 진압대원들이 잔불을 제거하며 차량 내부를 살폈다. 트렁크를 열었다. 안 쪽에는 박스 채로 쌓인 군납 소주와 계급장이 박힌 모자, 구겨진 군복이 있었다. 군복 가슴께엔 명찰까지 또렷하게 오버로크 되어 있었다. 만취해서 운전하다가 전신주를 들이받은 김에 그대로 내뺀 젊은 장교의 모습이 그려졌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아니 물증도 시커먼 잔해로 남았으나 주인공인 사람이 없었다.


 제 차에서 난 불이 번져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되든 말든 일단 내 인생 보전하는 게 중요했을까. 뭐 그거야 요샌 많이 그러고들 사니까 그렇다 치고,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현장에서 도망친 시점에서 이미 감당할 수 없는 큰 거짓말을 한 셈인데, 이후엔 또 어떤 거짓말로 자신과 주변을 기만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젊은 장교가 너무 똑똑한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너무 똑똑해서 불 같은 거짓말로 주변을 온통 폐허로 만들고도 뻣뻣하게 고개를 들지 않길 바랐다.


 세월이 모든 발자국을 갉아먹어도 거짓은 영원하다. 거짓은 이를 닦고 제가 참인 양 미소를 짓지만 잇새로 새는 썩은 악취를 숨길 수 없다. 거짓은 영원히 거짓이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도 결국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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