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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18. 2023

개와 사람

 편의점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단다. 출동을 나가면서도 갸우뚱했다. 굳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신고를 부탁한 이유가 뭘까. 뭐 전화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환자 분 지금 상태가 어떤 것 같나요.

 멀쩡해 보이긴 하는데, 일단 빨리 좀 와주세요.

 뭔 일이 있나요.

 그런 건 아닌데 구급차 불렀냐고 자꾸 물어봐서요.

 알겠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르바이트생이 반색을 하며 환자가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한 남자는 5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냉장식품 매대 앞을 서성이던 남자는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집어 계산대로 가져왔다. 떡진 머리에서 담배 냄새와 지린내가 훅 풍겼다.

 저기요, 구급차 부르셨어요? 묻자,

 이것 좀 사줘요. 답이 돌아왔다.

 네?

 이거. 계산대에 올린 물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인데. 얼마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갑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안 돼요. 아프신 데는 없어요?

 아, 전엔 사줬는데.

 아프신 데는 없냐고요.

 온몸이 아파요.

 병원 가실 거예요?

 아뇨.

 그럼 구급차는 왜 불러달라고...... 아니다. 계산대에 덩그러니 놓인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가 눈에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생이 호소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대신 계산을 해서라도 매장에서 좀 데리고 나가달라는 눈치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안 돼요. 전례를 만들어버리면 다른 구급대원들에게도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 앞선 누군가가 그렇게 한 덕으로 내가 이런 어처구니 상황을 맞은 것처럼. 일단 온몸이 아프다 했으니 기본적인 활력징후는 측정해 보기로 했다. 예상했지만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혈당 모두 정상범위였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흰 병원 응급실로만 가요.

 병원은 안 가도 되는데.

 그럼요?

 집에 데려다주세요.

 안 돼요. 답을 하고 난 뒤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보니 거의 울상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댁이 어디신데요. 남자는 편의점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영구임대 아파트단지라고 답했다. 이 동네 가난한 사람들은 다 모여사는 곳이었다. 일단 타세요.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남자는 아쉬운 듯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에 있던 물건을 다시 매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구급차에서 내린 남자는 위아래로 휘청거리며 걸음을 뗐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두고 갔다가 넘어지거나 아파트 주차장을 나서던 차에 부딪히거나 하면 또 출동을 나와야 할 터였다. 남자의 겨드랑이에 한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팔목을 쥐어 부축했다. 온 김에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복도식 아파트의 맨 구석자리에 있는 남자의 집까지 갔다. 남자가 문을 열었다. 현관 앞 좁은 복도 끝 거실에 늙은 개 한 마리가 보였다. 개는 이쪽을 흘긋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집에는 살림살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옷장도, 침대도, 식탁도 보이지 않았다. 공처럼 뭉친 개털과 개똥만 굴러다녔다. 개가 사람 집에 얹혀사는 건지, 아니면 개 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건지 헷갈렸다.


 값싼 동정이 사람을 망친다는 말은 사실 말만 쉽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개와 사람이 뒤엉켜 서로가 서로 만도 못하게 사는 걸 보고 있자니 그들에게 당장 필요했던 건 그 값싼 동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들고 갔다면 어쩌면 개도 남자를 반겼을 것이다. 빌어먹는 밥이라도 밥 벌이하는 사람이 개보단 낫구나 하며 꼬리를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사 줄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늘 아래 숨은 세상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옳은 지 누가 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결정하면 될 일을 그렇게 또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난 남을 돕는 게 싫어서 고민하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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