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Nov 30. 2023

여행을 떠나요

 고속도로 순찰대와 전화하면서 현장으로 진행했다. 비가 내렸다. 졸음쉼터에 주차된 차 안에서 누가 번개탄을 피운다는 신고였다.

 안녕하세요, 119 구급대입니다.

 아, 예.

 저희가 도착하려면 십 오분은 걸립니다. 먼저 차 유리를 부술 수는 없을 까요.

 저희가 접근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이 길어지는 게 싫었다.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유리를 못 깹니까. 왜 접근을 못합니까. 차 유리를 박살내면 가스를 마신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까 봐 그렇습니까. 말은 빙빙 돌았으니까 소리가 되어 살아나지 못했다. 엊그제 앞으로 폐차할 때까지 안전하게 저희를 돌봐 주십쇼 하며 북어 대가리 놓고 고사를 지낸 새 구급차에 희망을 걸었다. 새 차는 빨랐고 흔들림이 없었다. 빗길을 시속 130킬로로 내달렸다. 본래 창문 파괴를 담당하는 구조대와 연락하니 그쪽은 최소 10분은 더 늦어질 거라 말했다. 구급대가 도착하는 대로 먼저 창문 파괴하겠음. 짧게 무전했다.


 졸음쉼터엔 고속도로 순찰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저 쪽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검은색 승용차가 있었다. 비싼 차였다. 섣불리 차 유리를 깨부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었으나 한편으론 또 화가 치밀어서, 아니 도대체 왜, 들으라고 한 마디 하고는 자동차 쪽으로 접근했다. 진하게 선팅이 된 유리 안 쪽 조수석 발 놓는 곳에 작은 프라이팬이 놓였고 그 위로 다 타서 뼛가루처럼 스러진 재가 보였다. 함께 출동한 대원 하나가 평소 가지고 다니던 열쇠고리 모양 휴대용 창문 파괴기로 차 유리를 깼다. 창문을 들어내고 운전석 문을 열자 이불을 덮고 잠든 남자가 나타났다. 목동맥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전에 너무 차가웠다. 고순대(고속도로 순찰대) 사람들 말로는 이틀 전부터 장기 주차되어 있던 차라고 했다. 차가 비싼 것 외에도 굳이 유리를 부수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지 싶었다. 어차피 그 안에 산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일산화탄소와 몸속 헤모글로빈이 결합을 하는 바람에 피부 곳곳에 붉은 반점을 남기는데, 이날 죽은 남자는 그것들이 중력의 영향으로 배와 허벅지 쪽으로 몰려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의미였고 덕분에 얼굴은 창백하고 깨끗했다. 죽은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찾아냈다. 나보다 일곱 살이 어렸다.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방 안 다닌 데 없이 주소지를 옮겨다닌 기록이 있었다.


 자동차 트렁크엔 낡아 뵈는 여행용 캐리어가 실려 있었다. 트렁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큰 물건이었다. 먼 곳으로 오래도록 떠나기 위해 챙겨 온 그것이 껍데기만 남아 가벼울지 아니면 미련을 꾹꾹 눌러 담아 무거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가 여행을 떠난 곳에 내가 아는 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고해는 받아주지 않는 신이나 빈틈없이 공명정대해서 귀한 삶을 저버린 죄를 물어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어떤 이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신. 악한 이들이 선한 이들의 뺨을 치며 왕처럼 사람 위에 군림하지만 내세엔 영영 고통받으리라 같은 희망가로 우리를 위로하는 신. 대신에 남자를 말없이 안아주는 불완전하면서 인간처럼 불안한 신이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빠가 학교에서 울고 돌아온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듯 남자의 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석 문과 차체 사이에 방수포를 끼워 깨진 유리를 가렸다. 삶이든 죽음이든 결판이 나서 속이 후련해 보이는 표정의 사람도 있었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그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방관을 고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