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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10. 2022

문 좀 고쳐주세요

 지령서에 어딘가 익숙한 주소가 떴다. 고속도로 IC로 통하는 고개를 넘기 전, 군부대 정면의 조립식 건물이었다. 주소가 눈에 익을 정도라면 최소 서너 번은 동일 장소로 출동을 나갔다는 걸 의미한다. 소위 수시 이용자, 우리 끼린 '네임드 유저(named user)'로 통하는 부류의 구급 요청이었다.


네임드 유저란 병력이나 출동 요청의 사유가 특색 있거나 성벽이 거칠어 주의를 요하는 신고자로서, 최소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구급차를 부르는 이들을 통칭한다. 하도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지령서의 주소지나 신고 전화번호만 보아도 내 경우엔 네임드 유저 개개인을 지칭하는 별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주공 3차 사람 잡는 해병대

2AM 마담 시스루

한 병 밖에 안 마셨어

나도 소방관이다


등등. 등등.


그중에서도 본 출동 지령의 주소지는 무려 '소설가' 선생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소설가 선생은 올해 초만 해도 남동생, 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두 달 전쯤 선생의 누이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당시 선생은 도내의 정신병원에 자의로 입원 중인 상태였다.


몇 차례 선생을 이송하면서 알게 된 바로는 본래 그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고, 세상과 섞이기 어려울 만큼 순수하며 어릴 적 지고지순한 첫사랑에 실패한 까닭으로 현재 가난을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산다는 것이었다(이런 진술은 모두 선생의 독백을 근거로 한다). 구급차에 오르기 전 그의 양손엔 언제나 보따리에 바리바리 싼 노트 수 십 권과, 최소 한 계절을 나기 위한 옷 뭉치가 들려 있었다. 정신 병원은 그의 창작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는 듯했다. 병원 입구에 내려줄 때면 매번 나의 이름을 물어왔다. 자신의 소설에 주인공으로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때마다 본명을 이야기해 주었는지 나 스스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과거의 내 모습(삶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을 그에게서 본 것도 같다. 나는 연극과 영화 제작을 전공했고 대본과 시나리오를 쓰는 게 나의 숙명인 양 대학시절 포함 십 년을 보냈다. 알만한 영화제에서 몇 번 이름을 올렸으니 재능은 반 푼어치 정도 있었던 것 같고, 가난을 핑계로 관뒀다. 와이프의 배가 불러오는 이유도 있었다.


출동은 선생 동생의 신고로 이루어졌다. 유리에 손을 다쳤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형에 비하면 말 수도 적고 늘 주눅이 들어있어서 매 출동 때마다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과 마주하는 걸 좋아라 하지 않는 부류인 것 같은데 유리에 손이 베인 정도로 구급차를 부른 게 이상했다. 불안감과 더불어 짬밥에서 비롯한 희멀건한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집 앞은 온통 피바다였다. 총에 맞은 짐승이 도망간 것처럼 입구 주변에 시뻘건 발자국이 이리저리 쇄도했다.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웃집 남자가 호스를 끌어다 제 집 마당에 피가 넘어오지 않도록 연신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옆 집 남자가 구시렁 대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이어지는 문은 양철문에 흐릿한 유리를 끼워 넣은 방식이었는데(대학가 주점 뒤편의 남녀공용 화장실 문 같이 생긴 바로 그것), 어째선지 유리는 박살이 나 있었고 거기서부터 온 집안에 피가 낭자했다. 소설가 선생의 동생은 메리야스에 팬티 한 장 달랑 입은 차림이었다. 출혈 부위는 왼쪽 팔목인 듯했고, 더러운 걸레를 집어 오른손으로 출혈부위를 누르며 기진한 듯 옆으로 누워 있었다. 주변에 쏟아진 피를 연신 닦아낸 흔적도 보였다. 방이 더러워지던 말던 목숨을 부지하는 게 먼저일 텐데,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환자분, 환자분."


"......"


초점 없이 졸린 듯한 눈.


"선생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 네"


"어디 좀 봐봐요. 아오, 왜 이래 이거. 어쩌다 그랬어요!"


왼쪽 팔목이 그야말로 아작이 났다. 가로 세로 구분 없이 깊게 파인 상처가 대 여섯 군대는 되었는데, 터진 상처 바깥으로 개울물처럼 졸졸졸 피가 흘러나왔다. 그나마 동맥성 출혈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출혈량으로 보아 머잖아 상태가 심각해질 것 같았다. 멸균거즈와 압박붕대로 일단 지혈조치를 했다.


"...... 방 안에...... 누가...... 있어요."


"네?"


서둘러 방 안을 둘러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요?"


"...... 방 안에서, 누가, 문을 잠가서......"


"아아...... 그래서 부순 거예요? 이쪽 손으로?"


"...... 네"


혈압을 체크했다. 수축기가 70 언저리에 잡혔다.


"시발...... 병원까지 쏴야겠다. "


늘어진 환자의 몸을 겨우겨우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구급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야 아주 기초적인 소생술이고, 장비나 위생환경 등의 열악함 탓에 외상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처치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혈 부위를 다시 체크하고 비재호흡 마스크로 산소를 주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자동 제세동기의 패치를 환자의 몸에 부착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환자의 얼굴과 제세동기 모니터를 번갈아 살피고 있던 내게 환자가 말을 건넸다.


"...... 저기요."


"네, 말씀하세요."


"문 좀 고쳐주세요."


"뭐라고요?"


"문 좀 고쳐주세요."


"......"


아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문이 중요한가? 집에 있을 때도 걸레로 바닥 닦을 시간에 서둘러 신고부터 했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정신병력이 있으니 이해를 해야 하지만 어찌해 볼 수 없는 말초적인 어리석음에 분통이 터졌다. 욕지거리를 하고 싶은 걸 간신히 주워 삼켰다. 대신 퉁명스럽게 툭 뱉었다.


"제가 그걸 왜 고쳐요."


그날따라 간호사 하나가 더 밉상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급한 환자라고, 출혈도 많고 바이탈 많이 떨어져 있다고 떠들어대도 듣는 둥 마는 둥, 자기는 이런 환자를 늘 보기 때문에 척 봐도 급한 지 아닌 지 알 수 있다는 듯 내내 느긋한 태도였다. 실제로 환자의 멘탈(정신)이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됐으니까 이제 가 보세요."


간호사가 눈길도 주지 않으며 툭 뱉었다. 대거리 하기도 지쳐서 그러려니 하고 돌아서려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환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입을 떼었다.


"문 좀 고쳐 주세요."


"...... 알았어요. 고쳐 드릴게."


귀소 하는 길에 관대한 마음이 되었던 건지, 그의 광기와 어리석음에 안쓰러움을 느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약속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근무지를 향해 차를 돌린 지 30분쯤 되었을 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가 사망했는데 연고가 불확실하여 문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뭔가 애매모호한 질문들로 가득 차서 나는 그날 하루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미치광이 형과 그걸 평생 뒷바라지하다 심장마비로 죽은 누이, 그리고 출처 없는 공포감에 집어삼켜져 유리문을 박살내고 자멸해버린 동생. 신이 있다면 여기 어디에 무슨 의미를 심어 놓았고, 왜 이들의 삶은 이런 뭣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냥 한 번 물어나 보고 싶었다.


나는 이때 인생의 자명한 의미 따위는 본래 실체가 없고, 부자가 되라느니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느니 사랑하며 살라느니 하는 등의 구호는 그저 삶의 의미 없음에 따른 지독한 발버둥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반쯤 동의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이 직종 특유의 직업병에 감염이 된 듯했다. 감기처럼 종종 찾아오는 이것은 어린 시절 내가 엄마에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느냔 질문을 하고 답을 얻지 못했을 때 경험했던 증상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이 병에 걸리면 우선 당장에 답을 얻지 못하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물음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그리고 생각을 곱씹을수록 지독한 우울감이나 분노, 슬픔에 휩싸여 단 시간 내에 대부분의 소방관이 지니고 있는 쾌활하고 진취적인 성정을 상실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애초에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혹자는 명상이나 운동을 추천하지만 내가 아는 동료들 중 80퍼센트 정도는 폭음에 따른 2차적 알콜성 단기 기억 상실증에 의존한다.


퇴근길에 망자의 집 앞에 들러 잠시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한 5분쯤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냥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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