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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03. 2022

훈련입니다, 훈련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동료를 둘러메고 산길을 내려갔다. 중간중간 계곡을 가로지를 일이 있었는데 비 내린 뒤라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일요일이라 등산객이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내 등에 업힌 동료는 애써 눈을 내리깔았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훈련입니다, 훈련.' 이라며 거추장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동료는 그날 우측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병원 응급실까지 찾아온 그의 젊은 아내에게 나는 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색한 목례만 한 번 주고받았을 뿐 주워섬길 말을 찾지 못했다.


그날의 출동은 산악구조대에서 첫 지령을 받았다. 그러나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본서의 지휘관은 산악구조에 특화된 구조대 대신, 가장 가까운 센터의 직원들이 출동하도록 상황실에 지령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수보요원들은 대개 짬밥이 많지 않으니 시키는 대로 재지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안 그래도 가파르기로 유명한 등산로인데 보급된 활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다 그만 4미터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사고였지만 막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나를 죄책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내가 이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주변의 많은 동료들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나 부상은 대개 억울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모 서장의 명령으로 한참 불어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에 이른 구조대 직원이다. 그는 물에 빠진 지 벌써 20여분은 된 사람(아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을 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살이나 다름없는 구조작전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말에 따르면 어디서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지 모를 언론사 직원들이 구조현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모 서장은 그들 앞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눈치가 보였던 걸까, 알 수 없다.


같은 직원의 압박에 못 이겨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생사를 오가는 현장직, 그러다 보니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고, 이전 세대의 소방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욕설과 폭력의 진탕 속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문제는 이러한 20세기의 교육방식이 최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우리 조직 내에 상당히 많이 남아있고, 이들이 새로운 세대의 직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요새 젊은 직원들은 TV 대신 유튜브를 메인스트림의 미디어로 인식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나 유재석이 유느님이지 그들의 눈엔 작은 아빠뻘의 아재가 방송에서 철 지난 멘트를 날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동영상 강의를 먼저 들으며 자란 사람들에게 주먹을 들이대며 현장교육의 절실함을 설파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내가 지금 책상머리에 앉아 몇 줄 활자로 의견을 피력한들, 유튜브나 틱톡을 통해 조직 내 부조리에 대한 200 bpm급 속사포랩이라도 한바탕 구사하는 것만큼 젊은 직원들의 공감을 사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신, 구의 언저리에 있는 나, 우리,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


함께 일하던 선배의 일도 생각난다. 요즘에야 언론에서 몇 차례 이슈화를 시켜서 민간인에게 얻어맞는 소방관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보상을 받는 일이 흔해졌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 선배는 자기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크고 덩치는 두배가 족히 될 법한 주취자 아주머니가 남편을 두들겨 패는 걸 말리다가 대신 화를 입었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순간적으로 눈앞이 번쩍 하면서 의식을 잃었는데, 눈을 떴을 땐 만화처럼 엉덩이를 쳐들고 방구석에 내리 꽂혀 있었다고 한다. 가끔 그 선배와 만나서 술안주 삼아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막상 당시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억울하게 폭행을 당한 선배에게 본서의 민원 담당자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일은 그냥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일반인들보다 인내심이 있다. 소방학교 시절부터 다소 엄격하게 교육을 받기도 하고, 언제 어떠한 현장이 출현할지 모르기 때문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긴장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탓도 있고, 현장 자체가 인내심을 요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종 명령만 내릴 줄 알지 책임에 대해선 모르쇠로 하는 지휘관을 만나 사고를 당하는 순간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던가, 그 선배의 경우처럼 민간인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어쩐지 소방관으로서의 인내심을 강요받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 인내심을 발휘할 일이 아니다. 아마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을 사랑한다. 해야 하는 일 자체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동료들도 직업의 특수성 탓인지 대부분 배려심이 많고 자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만약 내가 사고를 당하더라도 조직이 나를 책임져 줄까 하는 부분에 있어선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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