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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25. 2022

3지구 부루으쓰(Sector 3 Blues)

3지구는 복도식으로 지어진 15층 전후의 아파트 4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택공사에서 영구임대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주로 기초수급을 받는 이들이 거주한다. H안전센터 구급출동의 약 10분의 1은 3지구가 차지한다. 최소로 잡았을 때가 그 정도고 하루 출동 건수의 절반 이상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만약 3지구의 저력을 수상이력으로 표현한다면,


H센터 관할 내

10년 연속 최다 수시 이용자 보유 지구

35주 연속 주취 및 폭력으로 인한 구급출동 발생 지구

올해의 '비응급 단순 병원 이송 최다 요구'상 수상

'경찰과 소방이 함께 출동하는 아파트' 선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3지구가 얽힌 에피소드는 그 수가 많고, 독특한 맥락이 있다. 하여 여기에 떠오르는 몇 가지 일화를 적어보려 한다.



#1


자동제세동기와 루카스(자동 가슴 압박기), 휴대용 산소 가방을 들고 정신없이 주변을 살폈다. 주민 하나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신고였는데, 당최 아파트 단지의 어느 지점에서 사고가 터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신고자랑 통화 안 돼?"


"전화 안 받아요."


"장난 전화 아니야?"


"다시 해 볼게요....... 어? 받았다. 여보세요. 네, 네. 어디 계세요 지금?"


신고자는 놀이터 옆 나무덩굴로 그늘막을 해 놓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 외에도 주민 여럿이 모여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보통 구급차가 나타나면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데 3지구 주민들은 대체로 관심이 없다. 종이컵에 받아 든 소주 한잔을 끝까지 들이킨 뒤, 신고자가 느릿하게 일어나 우리를 안내했다. 술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화단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사이로 사람의 몸뚱이가 보였다. 얼굴은 멀쩡한데 팔다리가 기이하게 꺾인 모양새였다. 게다가 골반이 부서졌는지 혈액이 들어차서 복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경험상 7-8층 높이에서 추락하면 이런 모양새가 된다. 온몸의 뼈마디가 박살 나지만 어찌어찌 심장은 겨우 살아있는. 그래서 구급대원이 시도할 수 있는 전문소생술을 최대치로 동원하지만  대부분 심각한 내부 출혈로 인해 비가역적 쇼크에 빠지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목덜미를 쥐어뜯는 듯한 햇살이 내리쬐고 이마와 겨드랑이에 폭포처럼 땀이 맺혔다. 무시무시한 정적 속에서 심장을 압박하는 구급대원의 숨소리, 자동 제세동기의 무심한 메트로놈 소리만 생생했다.


신고자는 어느 순간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그 방은 늘 살이 썩는 냄새가 나서 후각이 마비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숨을 조금이라도 깊게 들이쉬면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정수리가 저리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풍기는 냄새도 여기에 비하면 구수하다 느낄 정도였다.


남자는 목 위로는 기능이 정상이었으나, 그 아래로는 한쪽 팔을 제외하고 전부 움직일 수 없었다. 네 홉 들이 플라스틱 소주병에 빨대를 꽂아 음료수처럼 마셨다. 담배도 태웠다. 불똥이 튀어서 이불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지독한 냄새는 남자의 몸 아래에서 풍겨왔다. 종종 고열로 인해 응급실을 찾을 일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로그 롤(통나물 굴리기 기법)을 해서 몸을 세로로 젖히면 군데군데 썩어서 구멍이 난 등짝과 엉덩이 주변으로 허옇고 붉은 진물이 흘렀다. 붙어서 돌봐주는 이가 없으니 욕창이 생긴 것이다.


남자는 구급대를 불러서 다양한 주문을 했다.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건 예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물과 소주를 꺼내 달라, 여름 한낮에 선풍기를 틀어달라 했다가 해가 지면 날이 추우니 선풍기를 꺼달라고도 했다. 재떨이로 쓰는 종이컵을 꺼내 달라는 것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한 번은 밥을 차려달라 해서 그날은 나도 참지 못하고 '이런 일로 부르지 마세요.'라고 쏘아붙인 뒤 팽하고 돌아섰다.


남자를 병원에 데려가면 늘 응급실 의료진들과 실랑이를 했다. 입구의 트리아제(중증도 분류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환자를 한 번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응급실 안으로 쪼르르 들어가서 인턴 의사를 데려와 방패막이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우린 쏘아(soar) 환자 안 받아요."


라고 뇌까리면 나도 지지 않고,


"여긴 뭔데 환자를 가려 받나요. 교수님들도 아세요?" 하고 받아쳤다. 그러면 허 참, 나 참을 몇 번 하고 마지못해 남자를 응급실 안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돌아설 때면 늘 뒤통수에 대침이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하튼 H지구에서 근무하는 3년간 꽤 미운 정이 들어서  어느 날 말끔하게 정리된 남자의 집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본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을 것처럼 쑥 들어가 있었고, 검버섯이 핀 팔다리는 허옇게 질려서 자작나무 가지처럼 보였다. 술병도, 재떨이도 보이지 않았다. 노랗게 물든 흰자위 중앙의 눈동자는 잿물을 덮어쓴 양 탁한 회색빛이었다.


남자는 그날 이후로 구급대를 부르지 않았다. 건강을 되찾았는지, 지금껏 살아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3


출입문을 열자 까마득한 어둠뿐이었다. 창에서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내부의 윤곽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어 준 남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집안은 천정까지 쓰레기가 들어차 있었다. 라면박스, 정체불명의 박스, 스티로폼,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비닐뭉치와 페트병들, 먹어치운 도시락 용기, 즉석밥 용기 등등 벽면마다 빼곡한 쓰레기 덕에 집 안은 거의 동굴이나 다름없었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통로를 제외하면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탓인지 악취를 머금은 푹한 습기가 가득했다.


"저게 사람 사는 꼴이에요? 예? 병원에 쳐 넣어야지."


쓰레기 통로 한가운데에 반라의 여자가 누워 있었다. 달랑 팬티만 걸친 비쩍 마른 몸에 산발한 머리칼이 마치 먼지 떨이개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여자는 어수선한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가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돌아누웠다. 구급대원 중 하나가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오빠 분이 신고하셔서 나왔어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여자는 돌아누운 자세로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일단 출동했으니까, 저희가 몇 가지 검사만 좀 할게요."


여자가 더 격하게 고개를 흔들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데려갑시다. 예?"


여자의 오빠가 재촉했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사람을 억지로다가 구급차에 태울 수는 없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하더라도, 환자 본인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더군다나 분명하게 거부의 의사표시를 한다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본인이 병원 가기 싫다고 하시면 방법이 없어요."


"아 그럼 어떻게 해요? 경찰을 불러야 하나?"


"경찰 불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분이 뭘 잘못하신 게 아니잖아요."


"니미! 끌고라도 가야지! 어?"


남자가 버럭 소릴 질렀지만 답해 줄 말이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노기가 가득한 눈으로 구급대와 동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한숨을 푹 쉬고는 구급대를 향해 돌아가라는 듯 훠이훠이 손을 저었다.



#4


처음엔 집을 잘못 찾았는가 싶었다. 참기름에 비벼진 고소한 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한쪽에선 연신 계란지단을 부치고, 다른 한쪽에선 김 위에 밥과 재료들을 올려 꾹꾹 말고 있었다. 팔뚝이 남자처럼 두터운 아주머니가 김밥을 두 줄씩 썰어내면,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스티로폼 용기에 담고 랩을 덮어 씌웠다. 보아하니 어디론가 내다 파는 모양이었다. 출동한 구급대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멋쩍어진 나는 결국 모양 빠지게 큰 소리로 외쳤다.


"신고하신 분 어디 계세요?"


그러자 김밥을 썰던 팔뚝이 두터운 아주머니가 돌아섰다.  그리고 방문이 닫혀있는 구석께의 방을 가리켰다.


"냄새나니까 들어가서 문 닫아요."


문을 열자마자 줄지어선 술병과 부루스타 위에 얹힌 먹다 남은 라면 냄비, 재떨이에 선인장처럼 쌓아 올린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왔다. 깡마른 남자의 시신 아래로 혈변이 흘러나와 꼬질한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숨 막히는 시취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는 시반, 헤 벌린 채 다물어지지 않는 악관절이 남자의 죽음이 꽤 오래되었음을 말해주었다. 방문을 열고 나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 아저씨예요."


"...... 돌아가신 거 알고 계시죠?"


"네."


"돌아가신 분은 구급차에 못 실어요. 좀 있으면 경찰 올 테니까 말씀 나누시고, 장례절차 밟으셔야 할 거예요."


"아, 안되는구나. 알겠어요, 그럼."


하고 팔뚝이 두터운 아주머니가 돌아섰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도마에 쌓인 김밥을 다시 두 줄씩 썰기 시작했다. 남자의 죽음이 오히려 달가와서인지 아니면 크게 감흥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그의 죽음이 안타까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3지구의 중심엔 가난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가난을 말한다기보단 마음의 가난까지 포함한다. 타인의 죽음보다도 나의 말초적 즐거움이 우선이며, 육신의 불구가 마음의 불구로 이어지고,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관계의 끝에 마침내 타인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기에 이르는 상태다.


나와 내 주변도 점차 3지구와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장기화되는 전쟁국면보다 하루치 주식 반등에 더 이목이 쏠릴 때 그렇고, 아이들에게 배려보다 경쟁을 먼저 가르치는 요즘 어른들을 볼 때 그렇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 덕에 삐걱거렸던 형제들의 관계가 코로나를 핑계로 완전히 틀어진 우리 가족을 보아도 그렇다. 재산을 불리고 싶어 종종 고민에 빠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그것보다는 인류애가 우선이노라 정신승리에 취하는 나 자신을 보아도 그렇다. 어쩌면 우린 아주 오랜 옛날부터 3지구만큼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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