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누가 누워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수십 분째 꼼짝도 않는다고. 상황실은 심정지 상황이라 판단해서 구급차 두 대와 구조차 한 대를 출동시켰다. 가는 동안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옆에 계신가요? “ ”네, 조금 떨어져 있어요. “ ”안 움직이나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시겠어요? “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
산에서 출동이 걸리면 정확주소가 아니라 휴대폰 GPS값을 가지고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구급차를 타고 산자락을 오르다 보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나타났다. 소생장비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펜션 건물 몇 채가 야트막한 언덕을 등지고 늘어선 곳이었다. “여기요!” 목소리는 들렸지만 주변을 암만 둘러봐도 산을 오르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방향에서 산을 타던 사람이 현장을 발견했지 싶었다.
길이 없어서 발로 길을 만들면서 갔다. “여기요!” 목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곧 작아지고, 다시 커지고를 반복했다. 그 소리를 이정표 삼아 발을 옮겼다. 중간중간 뭔지도 모르겠는 가시나무가 손등과 얼굴을 찔러댔다. 한 번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부러진 꽃나무 가지 하나가 바로 눈앞에서 멈췄다. “여기요!” 목소리가 바짝 가까워졌다. 그리고 뭐가 발에 툭, 걸렸다. 사람이었다. 두터운 군청색 패딩에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죽었구나.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게 더 익숙해서였던 것 같다. 분명 산 사람을 더 구급차에 많이 실었지만 마음에 남은 건 그보다 적은 수의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소리치는 사람은 엎어져 있는 사람에게서 20 여 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보통 타인과 내가 친밀해질 수 있는 거리로 45센티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의 약 50배 정도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남자의 목덜미와 허리춤을 잡았다. 잠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엎어져 있던 몸을 뒤집었다. 얼큰한 술냄새가 훅 끼쳤고, 동시에 널뛰던 심장이 착 가라앉았다. 만취한 노인은 새카맣게 염색한 머리카락 아래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 불러도 답이 없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하늘만 봤다. 주먹 끝으로 복장뼈를 세게 문질렀다. 굳게 다문 입이 뒤틀리긴 했으나 입을 열진 않았다. 어지간히 고집이 세 보였다. “보호자 분 없으세요?” 물으며 더 세게 문질렀다. “에이, 씨.”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그거면 됐다. 술이 노인을 퍼먹긴 했어도 노인을 죽이진 못했다. 내 주먹을 떼어 내려고 힘없이 휘젓는 노인의 팔다리를 피하며 점퍼 주머니를 살폈다. 왼쪽 주머니에서 뚜껑도 따지 않은 소주 한 병이 나왔다. 오른쪽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엔 필통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있었다. 하모니카였다.
노인이 누워있던 자리 옆엔 휴대전화가 있었다. 통화목록을 살폈다. 왕비님이라 저장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대강 설명하니 ”어머, 어머, 거기서 뭘 한데. “ 하는 답이 돌아왔다. 노인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외롭게 늙어가는 여느 사람들 같진 않았다. 자기를 염려하는 아내가 있고, 행색만 봐도 궁핍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가정이 있는 보통의 늙은 남자였다. 어쩌면 그래서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자로 늙은 사람들에겐 선망의 시선이, 가난하게 늙은 사람들에겐 동정 어린 시선이 쏟아지지만, 보통의 늙은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엔 그저 살아있어서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노인이 그랬고,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은 하모니카를 불었을까. 입에 문 하모니카에게 누구한테도 못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을까. 아마 못 했을 것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맨 손으로 차가운 하모니카를 연주하긴 무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거기, 친밀한 거리의 50배쯤 떨어진 곳에 말없이 혼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