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에서 약 십여 킬로 떨어진 작은 사찰로 출동을 나갔다. 콘크리트 포장이 끝나고 날 선 자갈이 비죽비죽 솟은 길을 한참 달렸다. 며칠 내린 봄비로 죽이 된 오르막길 끝에 목적지가 있었다. 사찰이라기 보단 기와를 얹은 오두막 같은 느낌이었다. 이가 빠지고 색이 바랜 현판이 입구 여닫이문 옆에 기우뚱하게 붙어 있었다. 현장은 고요했다. 고요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지경이었다. “계세요!” 부러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입을 열기 전보다 더 커다란 적막이 주변을 에워쌌다.
문을 열었다. 어둑한 집 안쪽에서 희멀건 털뭉치 같은 것이 벌벌 거리며 다가왔다. 머리카락이었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입구를 향해 한 걸음에 오 센티씩 종종걸음을 놓고 있었다. “신고하셨어요?” 물었지만 가는귀가 먹었는지 계속 종종걸음으로 가까워지기만 했다. “신고하셨어요?” 재차 물었다. 그러자 ”119? “ 대답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답이 돌아왔다.
노인은 싸움이 날 것 같아서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누구와 싸울 뻔했느냐 노인의 귀에 소릴 지르다시피 묻자 사찰 맞은편 창고 건물을 가리켰다. 창고 전면엔 아무것도 없어서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머리를 박박 밀고, 승복 바지를 내린 채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노스님이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화들짝 놀랐지만 힘이 없는지 곧장 바지를 추스르진 못했다. 대신 내가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잠시 뒤, 노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른 다리를 절며 창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놈한텐 악신이 씌었어.” 그녀가 말했다. “나는 부처님 모시고 산 죄 밖에 없어. 그런데 나를 두들겨 패고.” 말하며 바지를 걷어붙이자 정강이에 묵은 때처럼 얼룩덜룩한 상처들이 드러났다. 오른쪽 무릎은 뒤틀려 있었다. ”하루 이틀이라야지.“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기 오빠에 관한 이야기였다.
노스님의 오빠는 그녀가 14살 때 6.25에 참전했다. 그리고 육탄 10용사로 전사했다. 이후에 그녀는 혼자 남았는데, 피란길에 가족과 헤어진 건지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처사(출가하지 않고 불교에 귀의한 남자)라고 부르는, 예의 가는귀가 먹은 노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죽은 오빠의 넋을 기리기 위해 평생 부처님께 기도했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건 오빠가 그리워서 영영 닿을 길 없는 넋두리를 한 것이었다. 죽으러 가기 직전까지 다 큰 동생을 업어줬다는 오빠. 오빠 이후로 그녀가 만난 남자라곤 자기를 반병신이 되도록 두들겨 팬 사람과 눈물로 기도해도 내내 미소만 짓는 황금빛 불상뿐이었다.
내가 여기 나이 든 여인을 스님이라 불러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어떤 절차를 밟아 스님이 되었고, 또 남자와 함께 살게 되었는가 같은 것을 떠올리면 여인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 내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십 분쯤 이야기를 듣다가 우는 여인을 뒤로하고 구급차에 탔다. 진창인 길을 돌아가는데 바퀴가 헛돌아서 영 차가 나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