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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31. 2024

소방관도 사람입니다

회칼로 자해를 하려는 위급 상황이라고 신고가 들어왔다. 섬찟했으나 곧 미심쩍었다. 수보요원은 보통 신고자가 말하는 그대로를 지령서에 옮겨 적는데, 나는 저 ‘위급 상황’이란 말을 제 입에서 꺼내는 사람을 살면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군대라면 모를까. 아니면 만화.


현장에는 경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때가 새벽 세 시쯤이었는데, 소방  상황실에서 공동대응 요청을 한 덕에 불려 나왔으리라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했다. 위급 상황이라고 이야기한 신고자 겸 자해의 주체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다. 한 달에 스무 차례도 넘게 신고를 한 상습 신고자이자 오로지 소방관, 경찰관, 병원 의료진들을 일회용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기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그 사람. 회칼도 뻥이었고, 위급 상황이란 말도 뻥이었다. 뻥이 뻥이었단 것만이 진실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리던 기관원(운전 요원)은 마침 주차한 자리가 배수로 옆이라 차에서 내리다가 발을 삐끗했다. 나는 새벽에 불려 나오면 으레 그렇듯 통풍 때문에 발을 절었다. 우리는 절뚝 걸음으로 다가가 물었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나요. 그러자 당장 아픈 곳은 없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저흰 들어가 보겠습니다, 경찰관님들도 수고하셨어요. 말하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가 소리쳤다. X팔! 그냥 이러고 가는 겁니까?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네.


대거리하기도 지쳐서 그냥 그렇게 말하고 돌아왔다.


국가직으로 바뀌고 조직이 커지면, 조직이 조직원들을 이전보다 잘 보호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국가직이 되면서 곧장 한 일이 소방 조직 전체의 행사복(정복)을 멋들어지게 개편한 것이었고, 덕분에 피복 예산이 모자라 한 해 동안 누더기가 된 활동복을 입게 되면서 그런 기대를 접었다. 머리가 하나 더 생긴 덕에 감찰은 두 배로 늘었고, 자살하는 소방관의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소방 병원은 2025년에 완공된다고 말은 하는데 의사가 모자란 지금 그마저도 실현이 될지 의문이다.

나는 크게 바라는 것 없다. 그저 조직원들을 의도적으로 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조직이 조직원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영웅 소방관, 희생과 봉사 정신이 투철한 소방관 이미지 굳히기에만 여념 하지 말고 소방관들 또한 상처받기 쉬운 보통 사람들이란 사실을 인지하면 좋겠다.


희생, 봉사, 인류애, 좋다. 그러나, 새벽 세 시에 발을 절며 이유 없이 욕을 먹는 일 어디에 그런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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