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화로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로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였다. 엄마는 간경화였다. 신고자는 시댁 식구들과 명절 맞이 식사를 마치고 친정으로 오는 길이었다. 오는 길 내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간성 혼수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이렌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경광등을 켜고 빠르게 달렸다. 다들 집에 있는지 도로는 한산했다. 평화로운 명절에 우리만 난리인 것 같아 민망한 기분이었다.
심폐소생술 장비를 전부 짊어지고 신고자의 엄마가 사는 아파트 13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신고자가 알려준 비밀 번호를 눌렀다. 현관문을 열었다. 당장에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인기척도 없었다. 신발을 신은 채로 안방, 화장실, 작은 방 문을 차례로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베란다 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뭉근하게 끼쳤다. 널찍한 고리 버들 바구니에 빈대떡, 동태전, 깻잎전이 빼곡하게 담겼고 그 위로 뜯어낸 달력이 덮여 있었다. 가스렌지와 목욕탕 의자도 덩그러니 놓였다. 내내 앉아서 전을 부친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없었다.
너무 아파서 택시라도 잡았나. 아니면 근처에 쓰러져 있는 건 아닌가. 경찰 공동대응으로 수색을 요청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찰나에 그게 눈에 띄었다. 거실 식탁아래 놓인 개밥그릇이었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혹시 개를 키우시나요.” “네.” “어머니 지금 산책 나가신 모양인데요.” 말하기 무섭게 현관문 쪽에서 삑삑삑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엄마야!” 어머니가 소리쳤고 우린 장정 셋이 빈집에 시커먼 신발자국을 남기며 쳐들어온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다행히 어머님은 딸내미가 걱정이 너무 많다며 깔깔 웃었고, 나는 그걸 이해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돌아오는 길에 구급차 안에서도 고소한 냄새가 났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거라며 어머니가 전을 잔뜩 챙겨주신 덕이었다. 기름 묻을까 비닐을 세겹으로 쌌는데도 고소한 냄새가 났다. 가려도 사람 향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옛말처럼, 매일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