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차린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무쇠 주물팬에 통삼겹살을 굽고, 유튜브 비전의 고추장 닭볶음탕, 굴비 구이, 미역국, 잡채까지 거하게 한 상 차린다. 첫째의 만 8번째 생일상이다. 메뉴가 많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럽다거나 짜증스럽거나 하진 않다. 특별한 날이기도 하거니와 첫째와 아까 나눈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까닭이다.
“아빠가 부자면 어떨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생일 선물로 베트남 여행을 가고 싶다던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게 조금 속상해서 꺼낸 말이었다.
“부자 아빠는 싫어.”
“왜?” 의외의 대답에 내가 오히려 놀라서 물었다.
“아빠가 부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질 거야.”
“......”
“소방서도 안 다닐 거고. 글도 안 쓰고. 돈이 많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그럴 것 같다.”
“그냥 너무 가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 아이가 결론을 내렸다.
그때 내 눈앞엔 상상 속의 산신령이 나타나 물었다. “이 새끼가 네 새끼냐.”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예, 그 새끼가 제 새낍니다.” 하고 답했다. 그러다 조금 자신 없는 투로 덧붙였다. “제 새끼가 맞긴 한데, 어디서 그런 새끼가 튀어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날 적부터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추구하는 지상 최대의 삶의 목적이 사랑이란 건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또한 통장에 찍힌 숫자가 늘어나는 일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부모들에게 쓸데없는 짓 말고 자기랑 놀아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 내 아이는 인간은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형편일 때 가장 인간답다는 걸 알려주었다.
아마도 지혜는 뱃속에 밀어 넣은 밥그릇 숫자가 많다고 깊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