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눈이 내렸다. 핑계 삼아 오늘 산책은 미루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벌써 각자 킥보드에 올랐다. 아내도 패딩에 매달린 모자를 덮어썼다. 어지간히 밖에 나가길 좋아하는 세 여자다. 머리숱이 적은 나는 산성눈을 염려하면서도 또 뭘 뒤집어쓰긴 싫어서 그냥 나갔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우리 넷 뿐이었다. 눈이 점점 더 많이 쏟아졌다. 까만 하늘이 끊임없이 별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 아래서 킥보드 바퀴 여섯 개가 무지개 빛으로 빛나며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를 반복했다. 아내와 손을 잡고 걷다가 손이 시려서 팔짱을 끼고 걸었다. 집 근처 놀이터까지 왔다. 벤치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젊은 연인이 눈송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네며 미끄럼틀이며를 오가며 부산을 떨자 연인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눈송이처럼 녹아버린 것도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오리 가족을 만났다. 그쪽도 우리처럼 넷이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일기를 썼다. 첫째도 제 일기장을 가져와 식탁에 앉았다. 어지간히 쓰기 싫은 눈치였다. 그래도 이젠 내가 쓰란 얘길 하지 않아도 알아서 쓴다. 식사 후에 이를 닦는 것처럼 잠들기 전에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 습관이 언젠가 네게 큰 위로가 되리라. 생각하며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한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벌써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아빠가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먼저 다 쓰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데, 아이가 일기장을 가져왔다.
“오늘은 쓰기 힘들었어.”
“그래? 어디 한 번 볼까.”
2월 24일
오늘은 산책을 했다.
어두운 밤길에 새하얀 빙수처럼
환한 빗처럼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포근한 눈
차겁지만 따뜻하게 감싸는 하얀 눈
땅은 하늘과 이야기를 나누듯
하얐게
물드러 갔다
이렇게 쓰려니 힘들지. 속으로만 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