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학교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초중고 12년 개근을 해도 결국 소방서로 출근하는 걸 보면 인생에 큰 영향은 없는 게 분명하고, 학기 중에 며칠 결석한다고 아이가 엇나갈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학교 빠지고 놀러 가기로 했다. 혹시나 아이가 결석하는 것을 염려할까 싶어 물었다. “학교 안 가고 놀러 가는 거 괜찮겠어? “ 물으니, “너무 좋아. “ 답이 돌아왔다. 뼛속까지 내새끼였다.
아내는 어디 놀러 갈 때면 좀 무서우리만치 철저한 준비성을 발휘한다. 식구들 각각의 속옷, 여벌옷, 셀카봉, 스케치북, 종이접시, 필기구, 세면도구, 블루투스 스피커, 충전기, 챙겨야 할 리스트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여행 출발 직전에는 내게 ”목장갑은 챙겼어? “ 하고 물었다. 워터파크에 목장갑을 가져가려는 이유가 뭘까. 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준비를 마무리했다.
목적지는 내가 사는 곳에서 약 3시간 거리의 워터파크였다. 감자스틱 과자 두 봉지를 비울 즈음 목적지가 나타났다. 비수기 할인에 더해 소방서에서 일한다고 돈을 또 깎아준 덕에 네 식구 6만 원으로 종일 이용권을 끊었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해서 실내만 운영했다. 아이들이 실외의 대형 슬라이드 같은 걸 이용하긴 아직 어려서 큰 상관은 없었다.
우리는 대형 파도풀과 유수풀을 오가며 놀았다. 유수풀은 워터파크 외부로 이어져 있었는데 물이 따뜻해서 춥지 않았다. 평일인 데다 학기가 시작한 시점이라 전세를 내다시피 했다. 꺅꺅대며 물살에 밀려나는 아이들을 쫓아 잡기 놀이를 하는데 문득 풀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안전요원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요원은 두터운 롱패딩을 입고 전등갓 모양 전열기 아래서 오들오들 떨며 손을 비비고 있었다. 미안하고, 민망하고, 무엇보다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아이들끼리 유수풀에서 놀게 두고 한 번씩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내는 실내에서 수영복 차림을 하고 있는 게 민망한지 처음엔 쭈뼛댔는데 어느 순간 생전 처음 보는 초등학생의 팔을 잡고 파도풀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우리는 오전 11시부터 마감시간인 오후 4시까지 손바닥 발바닥이 팅팅 불도록 놀았다.
숙소 주변에 먹을 만한 게 없어서 족발을 시켰다. 부러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족발집에서 포장을 했다. 살면서 먹어 본 족발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널찍한 숙소 곳곳을 쏘다니며 숨바꼭질을 했다. 방은 약간 덥다 싶을 정도로 따뜻했다. 족발도 따뜻했다. 워터파크 풀장을 가득 채운 물도 따뜻했고 전열기 아래 몸을 녹이던 안전요원의 수고도 따뜻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아내와 한 잔 기울이며 물었다.
“근데, 목장갑은 왜 가져오라고 한 거야?”
“자기가 뭔가 고칠 일이 생길 줄 알았지.”
딱히 망가진 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하루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