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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18. 2024

안녕, 치즈

그놈의 고양이는 왜 자꾸 달라붙는지 모르겠다. 내가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털 날리는 게 싫어서 잘 만지지도 않는데 희한하다. 소방서 정문 계단에 걸터앉아 커피 한 잔 하고 있으면 뇽뇽뇽뇽 소릴 내며 다가와 내 발등에 제 얼굴을 문댄다. 야간 출근했을 때 몇 번은 대기실까지 따라오려고 해서 들어다 소방서 뒷마당 멀찍이 내려놓고 대기실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그러면 밤새 얘기 좀 하자고 창 밖에서 애옹 애옹 말을 걸었다.


자동차 사고로 형을 잃고 어미는 눈 내리는 겨울 속으로 사라진,  외로운 고양이 치즈. 최근 몇 달간 감기를 앓아서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잘 살아남았다. 이젠 봄이다. 작년 여름인가 구조된 어미 뱃속에서 나왔으니, 내가 알기론 녀석이 태어나서 처음 맞는 봄인 셈이다. 건방지게 연애도 하러 다니겠지. 네 묘생이니 내 알 바 아니지만 어디 가서 퇴짜나 안 맞고 다니면 좋겠다.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으니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고양이들도 보는 눈은 있겠지. 그나저나, 이 몸이 출근하셨는데 얼른 달려와서 반기지 않고 뭘 하는 걸까. 출동벨이 울린다. 얼른 다녀와서 인사를 해야겠다.


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이곳저곳 전전한다고 시간을 지체했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치즈는 점심으로 뭘 먹었을까. 동네에 밥 주는 아주머니가 계시니 거기서 먹었을까. 직원 중에 누가 별식으로 츄르라도 챙겨줬을까.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치즈 먹을 걸 챙겨준 일이 없다. 사실 나는 동물들에게 정 붙이는 게 별로다. 어릴 때부터 마당에서 개를 다섯 마리쯤 키웠는데, 하나 같이 학교 다녀왔을 때 죽어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오며 가며 예뻐하는 걸로 만족한다.


출동 마치고 돌아와 동료에게 물었다.


“치즈 못 봤어? ”


“고양이 죽었어요. ”


“어? ”


“아침에 피 토하고 죽어 있었어요. ”


그러니까 나는 땅에 묻은 지 한나절 된 녀석이 어디를 갔나 계속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못 먹을 걸 집어먹었나 보다. 소방서 뒷마당에 나가보니 누가 무덤을 만들어 놨다. 작은 몸집만큼이나 작은 무덤이다.


내 마음엔 이미 수많은 죽음들이 뚫어 놓은 구멍이 있다.  너의 죽음은 너무 작아서 분명 그  구멍 밑으로 쏙 빠져나갈 것이다. 눈물도 함께 빠져나갈 것이다. 밥 안 주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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