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Jul 13. 2024

동물포획

도로에 맹견이 돌아다닌다는 신고였다. 동물포획용 뜰채엔 플라스틱 장대 끝에 둥글게 테를 두른 그물망이 부착되어 있다. 거대한 잠자리채라고 생각하면 된다. 뜰채를 구급차에 싣고 주소지로 이동하며 신고자에게 전화했다. 지금 현장에 계시나요. 아니요, 차 타고 지나왔는데요.


굽이 굽이 돌아가는 산길을 달렸다. 지령 주소지는 정확지점이 아니라 GPS 값이었다. 개가 거기서 기다려줄 리도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구급차 바로 정면을 보고 개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서 있었다. 20미터쯤 뒤에서 차를 세우고, 뜰채를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짤막한 다리에 반들거리는 검은색 털, 누가 손바닥으로 눌러 놓은 듯한 얼굴, 덩치는 겨우 내 팔뚝만한 작은 개였다. 아니, 맹견이라며.


개는 뒤에서 다가가는 내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며 뜰채를 휘둘렀다. 개는 여유롭게 그걸 피했고,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몸을 일으켰을 때 개는 이미 20미터쯤 앞서 달리고 있었다. 니가 달려 봤자지. 나의 긴 다리와 너의 짧은 다리를 믿고 개를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짧은 개가 더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도 짧은 애들이 더 빨랐다. 나는 다리만 길었지 굼떠서 한 번도 계주에 나간 기억이 없다. 개는 뒤에서 쫓아오는 인간의 역량을 파악했는지 속도를 늦추었다가 내가 따라잡을 때 즈음 약올리듯 근육질의 엉덩이를 꿈틀대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뜰채를 들고 1킬로쯤 전력질주를 한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전기를 들고 무심결에 송신 버튼을 눌렀다.


“본부, 본부.”


“여기 본부.”


“어......지금 개는 발견했는데, 어......힘들어서, 아니, 개가 너무 빨라서 쫓아갈 수가 없음.”


“......본부 수신.”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개가 배도 불룩하고 젖이 여물었던 걸로 보아 임신을 했던 것 같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 편히 몸 누일 곳을 찾는다면 좋겠다. 내가 그렇듯 너도 너의 아이들에게 선물해야 할 세상이 있으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