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은 호사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기름에 튀겨내는 이 음식엔 빛바랜 부요함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모름지기 닭고기란 알을 낳고 낳고 또 낳아 더 이상 낳을 힘도 없어 죽음을 앞둔 늙은 닭을 푹 고아서, 말라빠진 고기는 쭉쭉 찢어 식구 수 대로 그릇에 나누어 담고, 국물도 그냥 넘기기 아까우니 불린 찹쌀을 섞어 한 솥 가득 죽을 끓이는 그런 음식이었으리라.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닭고기란 겨우 손바닥만 한 종이상자에 담기는 이것, 바로 통닭이라고 자신한다.
바닥을 뒹구는 통닭을 마주한 일이 있는가? 황금빛으로 튀겨낸 프라이드 통닭, 달콤하고도 짭쪼름한 간장 통닭, 케첩과 고추장의 환상적인 배합이 빚어낸 양념통닭 등등. 도시 구급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들 색색의 통닭이 아스팔트 위를 수놓는 진풍경을 심심찮게 마주할 것이다. 코시국에 배달 수요가 늘어난 탓에 자연스럽게 사고를 당하는 배달업 종사자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거리에서 신호의 끄트머리에 급정거하는 앞 차에 부딪힌다던가, 차로를 구분하는 점선을 따라 질주하는 중간에 무심코 차선을 변경하는 차량에 부딪힌다던가 하는 일이 하루 건너 한 번 씩은 생긴다. 출동지령을 따라 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팔이고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환자가 눈에 띈다. 촉진을 하려는 구급대원을 밀친다거나, 아파 뵈는 사지를 건드릴 때에 소리를 지르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두뇌에서 육체의 말단까지 치명적인 신경계의 손상이 없단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단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안정화시킨 뒤엔 바닥을 나뒹구는 배달 음식에 눈이 간다. 식사 시간 또는 허술한 식사 뒤에 치명적인 허기가 찾아오는 시간 즈음해서 대부분의 배달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동 나온 도시 구급대 대원들은 따로 밥 때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서, 유혹을 이기려 해도 자꾸만 땅에 떨어진 통닭에 눈이 간다(나만 그런가?). 엄마가 3초 지나지 않았으면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박스 채로 떨어져서 먼지 묻지 않은 것도 있는데, OOQ치킨이네? 저게 돈이 얼마야?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귀소 할 즈음 해서야 식욕이 낳은 이 눈치 없고 산발적인 망상이 마음속에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퇴근하면서 통닭 시켜야지.'
그래서 한 손엔 통닭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엔 소주를 한 병, 기분 좋으면 두 병을 쥐고 집으로 향한다. 평소에 '아빠!' 하고 반기는 두 딸은 도어록이 채 해제가 되기도 전부터 현관문 너머로 '통닭이다!'를 외친다.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치킨무를 그릇에 담는 동안, 아이들의 손엔 벌써 닭다리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가장 맛있는 부위를 부모에게 양보하지 않고 먼저 제 입에 채워 넣는 모양이 하나 얄밉지 않고 되려 신이 난다. 돌이켜보면 나는 외아들이라 양손에 닭다리를 쥐고 먹으면서 엄마 아빠에게 한 입 주지도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도 신이 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하튼 통닭을 먹는 날이면 핑계 삼아 술 한잔 해서 좋고, 애들이 커서 한 마리로 슬슬 모자라는구나 행복한 고민을 해서 좋고, 옛 시절과 오늘을 저 기름기 가득한 상자에 한 데 넣고 버무려 추억을 빚어내는 기분도 좋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기왕 글을 써 내린 김에 내일은 통닭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