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셋

by 백경

농지를 가로지르는 시골길, 뒤집힌 화물 트럭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차량 우측 측면의 바퀴들로 진창 위에 겨우 중심을 잡은 모양이 기괴한 예술작품 같은 인상을 주었다.


부부는 함께 트럭을 몰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 날도 다 저문 시각에 무얼 하느라 차가 뒤집힐 정도로 속력을 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현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시내로 놀러 가다 그랬으리라. 늦은 시간까지 고용주가 일을 시킨 탓이리라.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귀가하려던 게 화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누구로부터도, 심지어 의식이 있었던 환자 부부로부터도 정확한 경위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애초에 저들이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중학교 시절부터 십여 년을 갈고닦은 이놈의 영어는 도통 쓸 데가 없었다.


남자의 왼쪽 정강이는 부러진 뼈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Y 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권역외상센터 급 병원으로 이송을 요하는 중상이었다. 야간인 데다 사고가 난 곳이 교통이 좋지 않아 이송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본부에 헬기 이송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왼쪽 정강이가 부러져 뒤틀려 있었다. 남자처럼 개방성 골절은 아니었으나 의식이 떨어지는 양 졸린 모습을 보였다. 어느 한쪽도 이송을 미룰 수 없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타 관할 구급대가 늦지 않게 도착했다. 부상이 심각한 환자가 여럿이면 처치의 지연을 막기 위해 가급적 분산시켜서 이송을 한다. 그렇게 부부는 구급차 두 대에 나뉘어 각각 다른 병원으로 실려갔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스물다섯, 스물세 살이라고 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탓에 이십 대 청년들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부부가 일을 하러 함께 바다를 건너왔다니, 낯선 땅을 처음 밟는 순간 그들은 얼마나 빛나는 꿈을 꾸고 있었을까.


문득 이십 대 중반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재즈 피아노를 배우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그때. 레슨비를 번다는 핑계로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을 가져다 당시의 여자 친구와 내내 술을 퍼먹는데 탕진한 젊은 날. 결국 꿈은 뒷전이 되어 먼지 쌓인 건반과 연인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나온 기억. 좋은 경험이었노라, 잘 놀았노라 으스대며 퀭한 눈으로 자위하던 내 모습. 오로지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좇아 제 나라를 떠나 온 부부를 보고 있자니 그 시절의 나와는 너무 달라서 한 없이 부끄러웠다.


이날의 사고가 부부를 절름발이로 만들지 않기를, 그들이 다시 일어나 처음과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정직한 두 사람이 꿈을 이루는 날에 대한민국은 참으로 기회의 땅이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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