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Sep 27. 2024

소방관 이전에 나는

“보호자 분. 지금 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괜찮아요.”


“아니, 지금 이게 심장이 완전히 멈춘 게 아니에요. 심실세동이라는 건데, 그러니까 멈추긴 멈춘 거지만, 소생술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어요. 아직 나이도 젊으시고...”


“그냥 하지 마세요.”


“아...”


상황실에 전화를 걸었다. 의료지도 담당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으나 보호자가 원치 않으면 굳이 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당뇨 합병증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소생술을 시도했는데 예후가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고려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머리로는 납득이 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약에 집이 아니라 바깥에서 쓰러졌다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만에 하나라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심전도가 결국 평행선을 그릴 때까지, 소생가능성이 0에 수렴할 때까지 내내 입에서 쇠 맛이 났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치료를 거부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것. 보건소 등에서 신청할 수 있다)를 써둘까 생각 중이라고. 그딴 걸 왜 쓰냐고 묻는 아내에게 답할 말이 없었다. 당신은 내게 피치 못 할 상황이 오면 절대 그만하라 말 못할 거다. 어떻게든 살려내라며 애먼 사람들을 원망할 거다. 내 딴에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인데, 그걸 말로 하자니 너무 슬퍼질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당신 눈만 시뻘겋게 만들어 놓고 어물거리며 자릴 피했다. 내 일이 일인 만큼 이따금 아찔한 순간이 있어 미리 써두려 했는데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그냥, 조금 치사하더라도 몸을 사려야겠다. 나는 소방관 이전에 아빠고, 남편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