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릴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지면, 그 위를 작은 파도처럼 질주하는 어린아이들, 스케이트 날 바깥으로 얼음이 사각사각 갈려나가는 소리까지 짜릿해서 나와 두 딸은 밀려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사 조심스러운 아내만 곧 펼쳐지게 될 진풍경이 눈에 그려지는지 심각한 눈치였다. 그녀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친 뒤 빙판 위에 몸을 실었다. 아니, 실으려 했다. 발을 디디자마자 39년을 함께한 몸뚱어리가 마치 5톤 소방펌프차 핸들을 처음 잡았을 때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몸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두 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디즈니의 모 왕국 공주님은 얼음 위를 새처럼 날다시피 하며 노래까지 부르는데, 아이들에게 그런 여유는 없어 보였다. 입에서는 노래대신 곡소리가 나왔고, 날기는 커녕 네 발과 엉덩이로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빠 하나만 믿고 빙상장을 찾았는데, 오늘 그는 평소의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운 남자가 아니었다. 무릎을 모으고 엉덩이를 있는 대로 비쭉 내민 채, 딴에는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초속 5cm의 덩치 큰 개미처럼 이동 중이었다. "어머! OO이 아버님,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동네 아주머니를 만났다. 허리를 세워 인사하려는 순간 뒤로 한 번 휘청했고, 중심을 잡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이다가 두 무릎을 빙판 위에 짓찧으며 그대로 아주머니에게 큰절을 했다. 민망해서 조금 사이를 두고 몸을 일으켰다. 배려심 많은 그녀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한 시간 여 동안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온몸으로 오롯이 느끼고 나니 제법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자세가 조금 펴졌고, 발 밑의 날로 빙판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밀어내야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잠깐 방심할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두 딸이 경외감과 질투가 어린 눈으로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아빠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도 해내리라며 불 뿜는 의지를 보여주듯 쿵, 쿵, 소리를 내며 힘주어 발을 디뎠다.
문득 빙상장 이곳저곳에서 정식으로 스케이팅 교육을 받는 다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처리부터 시작해서 몸의 무게 중심, 디딤발의 위치와 발을 바꾸는 타이밍, 진행 방향, 올바른 자세로 팔을 젓는 법 등등 얼핏 보아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었다. 강사들의 손길은 두서없거나 과하지 않아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빙판과 친해질 수 있게끔 유도했고, 양질의 교육은 곧 양질의 결과를 낳았다. 두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벌써 수년 뒤 빙상계를 주름잡을 초신성처럼 얼음 위를 매끄럽게 질주하고 있었다. 반면에 내가 잘 모르고 익숙지 않아서 내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바닥에 곤두박질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 부모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주변만 보아도 멋진 아빠들이 수두룩하다. 열심히 미래를 준비해서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가 된 나의 고등학교 동창, 젊은 시절부터 뚝심 있게 전기 기술을 익혀 건당 수 백의 일당을 받는 제부님, 치열한 피트니스 업계에서 살아남아 지역 내의 알아주는 회사 대표로 성장한 친우 모 트레이너......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건이 자식을 잘 키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가장 낮고 더럽고 어두운 구석을 비치는 나의 일이 자식들의 금빛 미래를 약속하진 않으리란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일이고, 그래서 남보다 자꾸 걸음이 늦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넘어진다. 무릎이 박살이 날 것 같지만 기죽지 않은 척 아픔을 떨치고 일어선다. 내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어때, 할만하지?"라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만 하면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빙판 위 같은 인생을 자유롭게 누비는 방법을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너의 삶은 반드시 자유로워지리라 기도처럼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