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공중 화장실 입구에 서 있었다. 만난 지 한 달 남짓한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고, 두 줄이 또렷하게 새겨진 임신테스터기 두 개를 내밀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직 존대가 익숙해서 "어쩌죠?"라고 묻는 미래의 아내에게 "결혼하면 되죠." 하고 멋대가리 없이 대답했다.
좋게 말하면 온화하고 성정이 물 같다 할 테지만, 실상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매사 무감각하다며 친한 벗들에게 줄곧 타박을 들어왔다. 그 대상이 식구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건 아내, 영문도 모르고 그 위험한 도박에 동참한 첫째 아이는 겉만 멀쩡하지 열 길 수렁처럼 까마득한 속내를 가진 남자와 살게 될 운명이었다. 뱃속의 아이 덕에 상견례에 이어 결혼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낭만과 로맨스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공중화장실 앞에서 결혼하면 되죠라고 이야기한 걸 수년간 프러포즈라 여기고 살았다. 첫째가 산부인과 의사의 무덤한 손길을 거쳐 내 품에 안겼을 때도 영화 같은 반전은 없었다. 양손에 전해지는 무게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자식이라는 의미부여를 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고, 놓치기라도 하면 허술한 장난감처럼 부서질 것 같아 서둘러 엄마 가슴에 내려놓았다.
일하던 체육관을 관두고 고향집에 아내를 데리고 왔다. 시집 살이 개집 살이 같은 옛 시는 철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부모님은 다른 부모와는 달라서 객으로 맞은 며느리를 홀대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개집에 금테를 둘러도 개집은 개집이란 사실을 몰랐다. 보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겠노라 기약 없는 선언을 했다. 아내의 말수가 적어졌고, 덜 성가셔서 좋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알만한 방송사의 PD인 외삼촌, 신문기자인 어머니를 보고 자라며 일찌감찌 내 꿈의 직업은 언론인으로 굳어졌다. 20대를 거치며 오만가지 아르바이트와 영어학원 강사, 체육관 트레이너를 전전하며 틈틈이 독립영화까지 찍으러 다녔지만, 그것들은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반짝이는 방송사 배지를 웃옷에 매달고 인기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OO신문 사회부 기자 누구누구입니다' 하고 명함을 내밀면 구린 구석이 있는 대기업 임원이 껌뻑 죽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이 꿈에서도 어른거렸다.
2년이 지났다. 그날도 선비인 체하는 한량 마냥 글방에 앉아 언론인으로서 대성하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방송사 1곳에서 1차 합격 통지를 받은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그것도 아무도 못할 일이라고 자위하며 온 가족을 희망고문했다. 책 읽기도 재미가 없어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시작했다. 건넛방에서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왜? 좀 있다 전화해." 하고 팩 쏘았다. "잠깐이면 돼. 안방으로 와 봐." 아내가 한층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덧붙였다. 짜증이 났다. 집구석에서 뭐 대단한 일이 생긴다고 공부하는 사람을 자꾸 오라 가라 하는 걸까. 부모님이 아시면 의지박약인 며느리 덕에 취업이 늦어진다고 한 소리 하실 게 뻔했다. 일부러 얼굴을 구기며 안방 문을 열었다. 심각한 표정을 봤으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내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첫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날 때부터 팔다리가 가늘었던 첫째 딸은 첫 돌이 지나도록 걷질 못했다. 먹는 대로 살집이 붙지 않고 키만 삐죽하게 자라서 몸뚱이만큼 큰 머리를 이고 앙상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안방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보라는 듯, 입을 앙다물고 힘을 준 두 눈이 아빠의 두 눈과 마주쳤다. 양 옆으로 미끄러지며 넘어지길 수 차례. 덜덜 떨리는 두 다리가 마침내 어색한 팔(八) 자를 그리며 섰다. 아이의 눈에 승자의 미소가 피어났고, 여전히 앉은뱅이였던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이가 세상에 던져진 지 일 년 하고도 육 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날 부로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아니, 내 입맛에 맞는 무얼 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꾸준히 다져온 체력과 한 때나마 열정을 쏟아부어서 공부했던 영어, 두 가지 특기를 가지고 당장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나, 소방관 할게."
늘 그래왔듯이 아내는 나의 결정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자발적 앉은뱅이가 사람 구실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소방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