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갚으라고 소리치는 친구

by 백경

눈 뜨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오랜만에 나는 또 인어공주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기고 두 다리를 얻은 대신, 걸을 때마다 발이 잘리는듯한 아픔을 감내하는 그녀. 그러고 보면 고전 동화들은 참 잔인하다. 주인공에게 뭐 하나 거저 주는 법이 없다.


지난 두 차례 발작은 전부 왼발이었는데 요번엔 오른발이다. 이름도 생소했던 통풍이란 병은 이제 잊을만하면 나를 찾는 친구 같다. 돈 갚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친구.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다. 지난밤 슬금슬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새벽 즈음엔 통증 때문에 안 찾던 하느님까지 찾게 만들었다. 창피하지만 119를 부를까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잘 아는 동료가 근무 중이라 관두었다. 아침이 되자 뭍으로 막 건져 올린 인어공주 신세다. 모래알처럼 작고 뾰족한 유리조각들이 발끝의 혈관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라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혹시나 내 부모님에게 전화가 와도 말하지 말라 부탁했다.


이따금 새로운 트라우마가 주는 스트레스, 교대근무로 인한 불면의 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습관성 음주와 과격한 운동, 이어지는 체내의 수분 부족. 통풍이란 짐승이 좋아할 만한 먹이를 스스로 마련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민망하다. 다른 이들에게 아픈 것을 비밀로 했으면 하는 이유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한 대 맞자 마법처럼 통증이 줄어들었다. 걸을만한 정도는 되어서 근처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와 약을 넘길 물 한 컵을 주문했다. 콜킨 정 두 알과 진통제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한 움큼이어서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기다렸다. 약효가 퍼지기 시작하자 인어공주의 두 다리가 다시 하나로 붙고, 고통 없이 대양을 헤엄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늘 야간근무도 평소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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