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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가

by 백경 Mar 09. 2025

실종자 수색을 나갔는데 현장이 눈에 익었다. 그때 그 노부부의 집이었다. 작년 여름인가 아내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 아내는 수색 사흘 만에 집 근처 갈대밭에서 발견되었다. 목발을 짚고 걷다가 논둑 아래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부패가 진행된 지 이미 오래여서 굳이 심폐소생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 돌아가시고 갑자기 아버지 치매가 왔어요.” 딸이 말했다. “그래도 착한 치매였어요. 제 얼굴도 알아보시고. 괜찮았는데.” 휴대전화를 꺼내 CCTV 녹화 영상을 보여주었다. 새벽 2시 즈음 맨발에 내복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도보로 주변을 수색하던 중 구조대로부터 무전이 왔다. 집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이웃집 밭에서 구조대상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소생장비를 들고 달렸다. 맞은편에서 구조대원이 노인을 등에 업고 달려왔다. 노인을 들것에 누이고 경동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코에 귀를 가까이하고 가슴이 오르내리는가 확인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의 맥박이었다. 귀에 들리는 건 내 코로 공기가 드나드는 소리였다. 노인의 가슴은 세상 끝 바다처럼 잠잠했다.


출근하는 아침 내게 잘 다녀오라 인사하는 당신을 보며 나도 결국 비슷하리란 상상을 했다. 당신을 잃으면 나도, 까마득 세상을 잊고 맨발에 내복차림으로 삶을 배회하다 죽으리라. 어쩌면 그게 평생 당신을 사랑한 기쁨을 누린 대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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