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필요하냐.”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용산 아이파크몰에 가구단지가 생겼단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식탁이요.” “가자.” 안 그래도 오래돼서 다리가 덜덜거리는 우리집 식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점심밥은 제가 쏘겠습니다 아부지.”
아이파크 몰 4층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태리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읽히지도 않는 그런. 이름만 번지르르한 중소기업들인가 보다. 6인용 원목 식탁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다.
“이거 좋네요. 가격도 저렴하고.”
“42만 원, 요샌 가구 잘 나오는구나.”
“그러게요.”
“이걸로 할까?”
“좋죠.”
아부지가 카드를 꺼냈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남자들은 옷이든 가구든 뭐든 쇼핑몰에 들어와서 시간을 죽이는 법이 없다. 그냥 맘에 드는 거 하나 고른 뒤에 밥이나 먹고 나오면 장땡이다. 점심은 맛있는 걸 사드려야겠다. 생각하며 가격표를 다시 확인했다.
”아부지.“
”어, 왜.“
”42만 원이 아니고 420만 원이네요.“
”!!!“
이후로 아부지는 앞서 걸으며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식탁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은 4인용 식탁 하나가 최소 300만 원을 넘겼다. 중소기업매장이 아니라 내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수입가구 매장이었던 것이다. ”아부지, 우리 이케아 갈까요? 거기 주변에 맛집이 있데요.“ 말해도 묵묵부답. 그렇게 아이파크 몰 5층으로 향했다. 이곳도 가구점 일색이었다. 단단한 원목 다리에 반짝이는 세라믹 상판을 얹은 식탁이 있었다. 이런 건 한 천만 원쯤 하려나. 가격표를 봤는데 웬걸. 가죽시트를 입힌 의자 4개를 합쳐도 150만 원을 조금 넘겼다. 그제야 천장에 매달린 가구점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리 바 트
“아부지 이거 보세요.”
“좋네.”
“그래도 비싸네요. 백만 원이 넘는데.”
“이거로 하지 뭐.”
아부지가 카드를 척 꺼냈다. 이까짓 거, 약간의 조소가 섞인 표정. 평소의 아부지로 돌아왔다. 3개월 할부로 식탁을 계약했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서 콧노래가 들렸다. 음 으흠. 음 으흠. 아내 말로는 나도 기분이 좋으면 꼭 저렇게 콧노래를 한단다. 음 으흠. 음 으흠. 실컷 돈 쓰고 점심밥은 햄버거로 때우고 오는 길이 뭐가 저리 신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