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엄마에게

by 백경

바다엄마. 나예요.

지금 구급차 뒤 처치실에 앉아서 전화기로 글을 적고 있어요. 오늘은 빙판 위 빗길이라서 병원 앞에 대기 환자가 많아요. 모시고 온 아주머니는 어지럼증 환자인데 지금은 곤히 주무시고 계세요. 나는 간호사가 앞선 환자들을 다 보고 마침내 구급차 문을 열기 전까지 여기 꼼짝없이 갇혀 있을 거예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적어요.


나는 종종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려요. 드라마 같지는 않고, 종종 TV뉴스에 나오는 그 정도 수준이에요. 폭력적인 환자, 고속도로 한복판의 현장, 내 몸을 직접 쓰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들. 그러다 보면 까딱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늦으니까, 아무 기별 없이 이별이 되니까, 꼭 해 두어야 할 말들만 여기 남길게요.


우선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문제인데, 순직한 소방관들에게 전국의 직원들이 얼마씩 모아서 위로금을 전해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아마 우리 사는 동네에 집 하나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남은 돈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애들이랑 셋이 한 두해 생활비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미안하지만 그 이후엔 당신이 조금 더 애써야 해요. 우리 애들은 벌써 속이 깊으니까, 엄마가 고생하는 거 알면 머리 크면서 잘 도와주려고 할 거예요. 그때까지만 좀 힘내줘요.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니까 살면서 홀로 견디기 힘들면 좋은 사람(정말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만나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세요. 당장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 편이 당신에게나 아이들에게 더 이로울 거예요. 우리 부모님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속 좁은 분들 아니니까. 노파심에 당부하자면 당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매사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나쁜 남자들은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지금처럼 사랑해 주면서 키우면 돼요. 남들 하듯이 애들 들들 볶아가면서 자기 꿈을 아이들한테 투영시키지 말고, 각각 다른 두 아이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다정한 말 해주고, 힘들어할 때마다 엄마답게 품어주세요. 나는 O박사님 같지는 않아서 잘 모르지만 울 엄니 아부지가 나는 그렇게 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참 행복했어요.


이제 우리 구급차 차례가 다 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은데, 어쩌면 길게 잔소리만 늘어놓는 일이 될 것 같아서 그만 줄여도 될 것 같네요.


긴 시간 변함없는 맘으로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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