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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an 14. 2023

하트세이버 아니고 하트브레이커

 지면에 적은 일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살린 사람도 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안 쓰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SNS에 소방서의 일상을 업로드하기 좋아하는 동기가 있다. 하트세이버를 받았노라고 ‘첫 하트세이버 기념’이라 커다랗게 써붙인 케이크 사진을 덧붙여 글을 적기도 했다. 줄줄이 따라붙는 하트, 댓글, 일반인들의 찬사. 차오르는 영웅으로서의 고양감.


 나의 첫 하트세이버는 배가 많이 나온 50대 아저씨였다. 임종호흡을 하는 중에 발견이 되어서 심장 리듬은 v-fib (심실세동, 정상리듬은 아니지만 다른 리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생 확률이 높다)에 가까웠고, 두 사이클의 가슴압박과 제세동 뒤에 마치 매뉴얼처럼 살아났다. 코를 골듯 하던 호흡이 정상 호흡으로 돌아오며 맥박도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 끝물에 걸린 출동이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집에 오자마자 옷을 입은 채로 고꾸라졌다. 며칠 지나서 내 근무가 아닐 때 아저씨가 음료수를 사들고 왔노라고 전 근무자가 이야기했다. 한 박스 밖에 안 되었고 내가 단 걸 안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냥 마셔서 치웠단다. 너라면 암만 단걸 안 좋아해도 그걸 마다하겠니 한마디 하려다가 치웠다.


 이후로 역시 배 나온 40대 아저씨, 아니, 이제 나와 동년배나 다름없으니까 젊은이, 아직 세상을 뜰 때가 아니어서 간신히 지상에 붙들어 드린 노인 몇 분 정도가 내 하트세이버 명단에 있다. 감사인사를 하러 오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었다. 어느 쪽이던 크게 맘이 쓰이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종점까지 차를 모는 거나, 사람 살리러 나간 구급대가 자기 일을 한 거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위의 이야기들에 무얼 덧붙여 서사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내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트세이버 개수에 15 또는 20을 곱한다. 만약 5개의 하트세이버가 있다면 75 또는 100이 된다. 이것으로 하트세이버의 숫자를 나누면 퍼센티지로 5에서 7 언저리가 되는데 그게 바로 평균적인 심폐소생술의 소생률이다. 다시 말해서 100명을 저승으로 보내는 동안 겨우 5명에서 7명이 살아난다는 의미다. 저승사자도 저 쪽 세상에선 공무원인지 자영업자들처럼 뭐 얹어 주고 그런 거 없이 팍팍하다. 백 명을 보내는 동안 딱 5에서 7이 그네들의 인심이다. 내가 특이한 걸 수도 있는데, 살아난 몇 명보다 현장에서 살리지 못한 백 명이 더 마음이 쓰인다. 하트세이버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15에서 20을 곱하고, 그 숫자는 100, 200, 300, 짬이 찰 수록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정작 많은 사람을 살린 대원들은 그걸 자랑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 자.' '하트세이버 O개에 빛나는 OO소방서 올해의 구급대원.' '시민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 기여한 바가 크므로 면장, 이장, 시장, 도지사, 소방청장, 국무총리, 대통령, 미국 대통령 표창 등을 수여함.' 뭐가 되었건 다 좋은데, 너무 드러나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요새는 누가 "반장님, 하트세이버 O개나 받으셨다면서요?"라고 물으면 속으로 혼자 한숨처럼 뱉는다.


 하트세이버 아니고 하트브레이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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