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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an 16. 2023

양심의 사각(死角)

 고맙습니다, 선생님.

 

 구급차 타고 가는 내내 벌써 다섯 번은 듣는 말이었다. 나보다 못해도 30년은 더 사신 할머님은 내게 연신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액면가 탓일 수도 있지만 굳이 얘기하지 않기로 하고. 여하튼 새벽 두 시경 갑작스런 저혈당 증세를 보인 할머님댁 영감님은 50퍼센트 DW(포도당 수액) 반 통만에 회복이 되었다.

 

 갑자기 막 승질을 부리더라고요.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그게 전조 증상이에요.

 근데 원래도 승질을 잘 내 가지고...... 지 승질에 기냥 거품 물고 넘어가는 줄 알았지.


 병원 인계는 수월했다. 회복이 되었다고는 하나 저혈당 쇼크가 이미 한 번 왔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빨리 환자를 받고 옆에서 관찰하려는 것 같았다. 일찍 귀소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막 콧노래가 나오려는데 할머님이 뒤에서 불러 세웠다.

 저기요, 선생님.

 네?

 계산은 어떻게 해 드리면 되지요?

 아, 어머님 저희 그냥 월급쟁이예요. 세금 내시잖아요. 저희가 그걸로 먹고살아요. 웃으며 대답하는데, 벌써 만 원짜리 몇 장을 지갑에서 꺼냈다. 나를 기어이 부정한 공무원으로 만드시겠구나. 다급한 마음이 들어 구급차 옆에 달린 CC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기 구급차 사방이 CCTV에요 어머니. 어서 도로 집어넣으세요, 저 큰일 나요.

 그럼 어디 안 보이는 데 없어요? 차 안에서 드려요?

 구급차 안에도 다 찍혀요.


 도무지 포기가 안 되는지 할머님은 꼬깃한 지폐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들어가세요. 추워요. 영감님도 기다리시잖아요.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뒤를 돌아보는 할머님과 겨우 훈훈한 실랑이를 마무리했다. 멀찍이서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동료가 걸어와 말을 걸었다.

 할머니랑 뭐 그리 재밌는 얘길 해요?

 어, 자꾸 돈 주시려고 하길래. CCTV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 그러자 동료가 조수석 바로 옆 공간, 그러니까 정면 카메라와 측면 카메라 사이의 공간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요. 여기서 달라고 하면 되지? 웃으며 말은 했지만 그나 나나 당연히 안 될 말인 것은 알았다. 그게 불법이라서가 아니고 할머니 쌈짓돈을 털어다 용돈으로 쓰기가 미안해서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은 CCTV가 아니니까. 양심에는 사각이 없으니까, 그래서 거절했다.


 그나저나 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액수가 너무 커서 그랬을까? 큰돈을 못 만져봐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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