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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Feb 14. 2023

선생님, 오래오래 사세요.

 선생님 그날 저를 왜 그렇게 때리셨어요. 국민학교 6학년 봄이었어요. 교장선생님이 나무복도에 왁스칠을 하라고 시킨 날이었지요. 학생들은 담임선생님 따라서 반마다 교실 앞 복도를 윤이 나게 닦았어요. 앞서가는 아이가 작은 깡통에 든 왁스를 주걱으로 푹 떠서 한 움큼씩 바닥에 털었고, 저는 뒤따라가면서 마대질을 했어요. 선생님이 뒤에서 저를 불렀어요. 이 새끼야 가로로 닦으면 왁스가 틈에 끼잖아. 저는 돌아서기가 무섭게 다시 몸이 돌아갈 정도로 왼뺨을 맞았어요. 쓰러질 것 같은 걸 일으켜 세워서 다시 왼뺨만 몇 대를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오른손잡이였던 게 분명해요.


 선생님, 혹시 그 전날 방과 후 교실에서 제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만질 때 싫어하는 티가 많이 났나요. 솔직히 그날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나 말고 다른 애 차례였는데 걔가 아파서 일찍 집에 갔거든요. 일부러 아픈 척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안경잡이 배신자 새끼. 덕분에 저는 이틀 연속으로 방과 후 수업을 해야 했어요. 기분 좋지? 숱 없는 원숭이 같은 얼굴로 묻던 선생님. 생각해 보니 평소처럼 좋다고 말씀을 못 드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날 그렇게 저를 때리셨나요. 전교생이 다 모인 복도에서 선생님은 왕처럼 제 왼쪽 뺨을 치셨죠. 몇 번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선생님도 기억 안 나시죠. 제 왼쪽 귀가 청력이 떨어지는 건 그때 너무 맞아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오른손잡이였던 게 분명해요.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 장가는 가셨나요. 그때 스물여덟, 아홉 정도였으니까 오십 대 막바지를 향해가고 계시겠네요. 주변에 함께하는 가족분들이 없으시길 바라요. 사실 제가 몇 년 전부터 소방서에서 일을 하거든요. 만약 선생님 집에 불이 나면 소방차에서 물이 안 나오는 척하고 그냥 불타게 둘 것 같아서 그래요. 아직까지 저의 직업윤리를 시험하게 만드는 사건은 없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요. 선생님은 몰라도 선생님 가족들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꺼림칙해요. 그 사람들은 무슨 죄에요.


 선생님께 이야기하다 보니 제 첫사랑도 떠오르네요. 이름이 지현이였나 현지였나 그랬어요. 통통한 얼굴에 선한 미소가 참 예뻤어요. 건너 건너 알게 된 소식인데 첼로를 전공했데요. 그 친구가 엄마 아빠 말고는 저한테 사랑한다고 처음 이야기해 준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은 우리가 사귀는 줄 어떻게 아셨는지 반 아이들 모두 모인 앞에서 우리의 만남을 기정사실처럼 공표해 버렸죠. 그 여자애는 그날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저한테 한 마디도 걸지 않았어요. 제 첫사랑도 끝이 났죠. 저는 그래서 사랑이 피고 지는 것보다 꺾이는 걸 먼저 배웠어요.


 애 둘을 키우면서 유치원에도 보내고 학교에도 보냈어요. 학교에서 상담이 있다고 하면 저는 애 엄마는 집에 있으라고 하고 제가 꼭 찾아가요. 안 그러고 싶은데 선생님 머릿속에 제 얼굴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는 마음이 돼요. 얼굴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아요. 우습게 보여서 내 새끼도 우습게 보이면 저처럼 우스운 꼴이 되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내고 끙끙 앓을까 봐요.

 좋은 인성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건데, 내 아이들이 저처럼 될까 봐 두려워요.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서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미움과 불신을 가질까 봐 두려워요.


 우리 엄마는 선생님을 용서하래요. 제 마음속 선생님은 제 왼뺨을 치던 그 모습 그대로라서 용서가 잘 안 돼요. 하지만 다 살아내고 먼지가 되기 직전의, 거미줄처럼 삶에 매달린 선생님의 모습을 본다면 용서가 될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서 우리 죽기 전에 꼭 한 번 얼굴 보고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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