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Nov 02. 2023

여자에게 사랑받는 법

 60대 남성이었다. 남자는 보도블록의 연석과 주차된 자동차 사이에 모로 누워 있었다. 젖먹이가 엄마 젖을 찾듯 남자도 자동차 바퀴의 타이어 부분을 더듬었다. 퍼즐처럼 끼어있는 남자를 꺼내려했지만 배가 너무 나와서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현장 근처의 젊은 가겟집 사장님들께 도움을 구했다. 뻑 하는 마찰음과 함께 남자가 튕겨져 나왔다. 에잇, 씻팔, 아파. 하고 웅얼거리는 남자의 엉덩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그의 친구가 걷어찼다. 신고를 한 건 친구 쪽이었는데 누워있는 남성이 다리를 못 움직이겠다고 해서 구급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온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너무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게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심이 들었다. 남자의 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응급실에 보호자로 올 수 있을만한 사람을 찾았다. 마누라, 딸, 아들로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최소 두 통씩은 걸었는데도 그랬다. 남자를 두고 멀리 여행을 갔거나 아니면 남자가 건 전화는 받지 않기로 나머지 사람들끼리 합의를 본 것 같았다. 잠시 후, 남자의 친구 부인이 현장에 와서 자기 남편만 집으로 데리고 갔다. 보호자 없이 주취자를 병원에 인계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이 사람이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를 얘기해 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술 취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진료 순서가 한없이 뒤로 밀린다. 결국 한 시간 반을 대기하다가 병원에 인계를 마치고 귀소 했다. 구급차 처치실을 정리하는 내내 어디서 썩은 막걸리 냄새가 났다.


 같은 날 새벽 두 시에도 주취자 출동을 나갔다. 경찰 공동대응 건이었다. 의식이 있는 주취자면 대개 경찰 선에서 해결을 하는데 우릴 부른 걸로 보아 무언가 문제가 있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근사한 바(BAR)에서 엉덩이 위로만 소파에 걸치고 누운 남자의 상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복장뼈를 가슴으로 아무리 문질러도, 쇄골을 뽑듯이 잡아당겨도 꿈쩍을 않았다. 잘 참는 사람인가 싶어 그의 한쪽 팔을 들어 얼굴 위에서 떨어뜨렸는데 그대로 수직 낙하하며 자기 뺨을 때렸다. 오줌을 지려 사타구니에 아메리카 대륙을 그려 넣은 청바지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운전면허증, 공무원증과 함께 오만 원권 몇 장이 꽂혀 있었고, 오빠, 많이는 못 주지만 재밌게 놀구 와, 사랑해. 라고 적힌 하트 모양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내가 그 오빠는 아니지만 괜히 죄를 지은 것처럼 부끄러웠다. 병원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환자분류소의 간호사가 또 술 취한 사람을 데리고 왔냐고 눈치를 줬다. 그녀도 내가 했던 것처럼 남자의 한 팔을 들고 얼굴 위로 떨어뜨렸다. 여지없이 뺨을 치는 손바닥을 보며 어머 어머 이건 이상하네. 하길래 나도, 그쵸, 이상하죠. 대답을 하고 응급실을 나왔다.


 이를테면 야간근무를 마친 당일의 저녁식사는 내게 포상 같은 느낌이다. 밤새 일하는 동안 라면 한 젓가락 입에 넣지 않고 잘 견뎌낸 나 자신에게 주는 상, 그래서 음식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욕심을 냈다. 고기만 삶기 허전해서 남는 화구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었다. 잘게 쪼갠 게맛살과 양배추를 썰어 넣은 샐러드도 곁들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더하다 보니 저녁은 간단히 먹어야 한다는 건강상식은 뒷전이고 거의 만찬에 가까운 식사가 준비됐다. 그리고 본래라면 빠뜨리지 않았을 그 한 가지를 더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찰나 둘째가 입을 뗐다.


 아빠가 술을 안 먹네?


 근 한 달간 다음날 아침 뜀박질이 염려되어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 이 정도 상차림이면 아빠가 소주를 까던 맥주를 까던 했을 텐데 밥과 찬만 내놓는 게 둘째 눈에 영 이상하게 비춘 모양이었다. 나는 스스로 술주정이 없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애들 눈엔, 혹은 와이프 눈엔 내가 잘 느끼지 못했던 순간순간들이 주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둘째에게 물었다. 아빠가 술을 안 마시는 게 좋아? 그러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응.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내가 마시건 말건 애들은 별 신경 안 쓰는 줄로만 알았다. 제 눈에 술 먹는 아빠가 별론데 밥에 술을 곁들이는 아빠를 볼 때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자 적어도 애 앞에서 술병을 까는 일은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버르장머리 없다고, 아빠 말을 안 듣는다고 가르치려들기 전에 아이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게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그게 내 건강과 우리 집 세 여자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받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통날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