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일기

2. Cảm ơn

by 백경

일어나자마자 “워터파크! "를 외쳐대는 두 딸의 성화에 떠밀리듯 숙소를 나왔다. 말로만 듣던 워터파크였다. 국내라면 이용료에 기름값에 기타 경비까지 네 식구 20만 원은 잡아야 해서 지금까지 엄두를 못 냈다. 같은 돈이면 바닷가 근처에 숙소를 잡고 근사한 바비큐를 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늘 바비큐냐 워터파크냐를 고민하다 여태껏 한 번을 못 데려갔다. 그렇다고 겨울에 데려갔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인당 만 원에 이용이 가능한 베트남에 와서야 아이들은 오랜 소원을 풀었다. 좀스럽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기엔 파도가 높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실내 워터파크가 붐비리라 생각했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도 금발이나 회색 머리칼의 외국인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었다. 현지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수 천평 규모의 시설을 전세를 내다시피 하고 놀았다. 건물 꼭대기엔 루프탑으로 널찍한 온천을 만들어 놓았는데, 워터파크에서 추위를 타던 아내의 신경질을 단숨에 아이스크림 녹듯 녹여버렸다. 돈 많으면 싸울 일도 없으려나. 속물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네 시간을 버텼다. 간식이라도 먹였으면 하루 종일 놀 기세였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유명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큰 감흥은 없었다. 듣던 대로 대한민국 경기도 다낭시인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었다. 평소보다 음식을 두 배는 더 시켰고, 계산서엔 민망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 찍혔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나마도 음식값이 비싸서 현지인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 식당이라 했다. 베트남 국민 월급 평균의 사분의 일이 우리 가족 식사 한 끼에 증발했다. 종업원들 눈에 참담한 돈지랄로 비쳤을 게 뻔하디 뻔했다. 내 돈 내고 당당히 즐기는 와중에 자꾸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아이들을 잠시 부모님 편에 맡기고 아내와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가자, 가보자 말만 했지 한 번을 못 들렀다. “시원하다는데, 같이 가서 한 번 받을까? ” 물으면 “돈 아깝게 그런 건 왜?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반의 반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운을 떼자마자 와이프는 실은 너무 받고 싶었노라 묵은 고백을 했다. 몰랐던 사실을 여행 와서 또 하나 알았다.

허브 향 가득한 목재 족욕통에 발을 담그고 오 분여를 대기했다. 잠시 뒤 말쑥한 옷차림의 여성 관리사 두 명이 입장했다. 그중 한 사람이 물에 담긴 나의 한쪽 발을 족욕통 가장자리에 올려놓더니 맨 손으로 정성스레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릎을 꿇고. 세월을 따라 굵어진 발가락 마디마디와 늘어난 거죽의 잔주름들을 타고 매끈한 열 손가락이 물결처럼 유영했다. 생애 최초의 세족식 뒤엔 아로마 오일 마사지가 이어졌다. 작은 덩치의 관리사는 팔꿈치와 무릎, 손바닥의 아래 부분으로 체중을 옮겨가며 생전 처음 보는 손님의 크고 단단한 몸을 능숙하게 흩어내었다. 고매하고 순결한 성직자 앞에서 발가벗고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팠던 어깨가, 허리가 진심과 실력이 담긴 손길에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아내를 담당한 관리사 몫까지 팁으로 각각 10만 베트남 동을 꺼냈다. 단위가 커 보이지만 우리 돈으로 겨우 5천 원 정도의 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액수였는지, 두 사람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하게 웃었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수고해 주신 것에 비할까.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관리사들을 향해 나와 아내도 연거푸 깜언(베트남어로 감사합니다)을 뇌었다.


저녁식사 장소까지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낭의 밤거리엔 젊음이 넘실거렸다. 어느 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젊은 연인과 젊은 가족을 태운 바이크가 보였고,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여기로 오라 유혹하듯 시끌벅적한 음악을 붙들고 사람 사이를 쏘다녔다. 나와 아내는 베트남에 온 뒤 처음으로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습한 날씨 탓인지 마사지를 받고 온몸에 활력이 생긴 탓인지, 아내의 얼굴은 물기를 머금고 색색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편해 보여서 미안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