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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Feb 08. 2023

당신의 상품가치를 증명하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단에 떨어진 너는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코를 골 듯하는 들숨을 보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15층에서 몸을 던졌지만 한쪽에 쌓인 눈 위에 떨어져서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많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에 새처럼 뛰던 심장이 멈췄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그 순간 내가 많이 미웠다. 너의 나이 열두 살이었다.


 심장 리듬 분석지를 출력해서  A4용지 위아래 두 줄로 붙였다. 제세동 패치를 붙인 순간부터 병원 도착 전까지의 히스토리를 용지 여백에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길게 소설처럼 적어봐야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메마른 죽음은 그렇듯 낭만이 증발한 문장이라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A4 용지를 스캔해서 PDF 파일로 만들었다. 깔끔해서 보기 좋았다.


 탕비실에 둔 베트남 커피 티백이 겨우 몇 개만 남았다. 남들 먹으라고 사 온 걸 내 입으로 집어넣기가 민망해서 서둘러 잔 하나 가득 얼음을 넣어 커피를 탔다. 도망치듯 사무실 뒤 흡연장소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이럴 때면 늘 고민이지만 너끈하게 담배를 태우고 싶은 욕구를 물리치고 목구멍 깊숙이 달디 단 커피를 채웠다. 하릴없이 전화기를 들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탔다. 미모의 공무원학원 일타강사가 학생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영상이 우연찮게 눈에 띄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희들의 상품가치를 증명해야 해. 잔인해 보여도 그게 현실이야. ”


 냉정한 이데올로기의 사회 운운. 자본주의 사회의 적자생존 운운. 책으로 써도 잘 팔릴 명언을 십여 분에 걸쳐 쏟아냈다. 역시 잘 나가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훌륭하게 자신의 상품가치를 증명했다. 혹시나 그녀가 이 글을 보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상품가치가 없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를 만한 게 못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어른들이,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훌륭한 상품으로 자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태되는 순간 창고 깊숙이 처박힌 재고상품이 되어 누구의 눈에 띄지도 못하고 곰팡이 핀 삶을 살리라, 은연중에 겁을 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쉴 사이 없이 아이들을 잡아 돌리고, 미끈한 유리알처럼 세공해서 자랑스레 진열장에 올리고.


 열두 살 너는 너의 상품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내는 이상 존귀하다. 그건 멍청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이전에 정해진 아주 오래되고 성실한 명제다. 너가 숨을 쉬었다면, 살아만 있었다면 증명되었을 불변의 명제. 그래서 너를 붙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오늘 나의 글이 상품이 되지 못하고 너에게 온전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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