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른손을 위해
첫째는 왼손잡이다. 엄마를 똑 닮아 나왔다. 그래서인지 미술이나 만들기 쪽으로는 영 잼병인 아빠와 달리 그리거나 주무르는 일을 좋아라 하고 또 잘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것 같은데, 왼손잡이는 우뇌형 인간(?)이라 이미지나 공간감 등을 처리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내가 어려서 미술을 포기한 건 철저한 좌뇌형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 본다.
왼손잡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단 하나 염려되는 일이 있다면 바로 글씨를 쓰는 영역이다. 이 나라의 표기법은 왼손잡이에게 대체로 불리하다. 글자 하나를 적어도 좌에서 우로, 낱말이나 문장을 적을 때에도 좌에서 우의 순서로 이동하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글을 적으려면 펜을 쥔 자신의 손에 글자가 가려서 울며 겨자 먹기로 주먹 너머의 이미지를 상상해서 써야 한다. 이 또한 뇌의 어느 영역을 훈련시키는 일이라 말하는 교육학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건 그 사람이 왼손으로 글을 안 써봐서 그렇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건 왼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앉은 자세가 대체로 좋지 않다는 거다. 주먹 너머의 일을 상상하길 거부한 사람들은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누이고 오른팔로 책상에 기댄 모양으로 글을 쓰는데, 그 자체가 척추측만을 일으키는 자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왼손잡이들이 이렇게 몸을 오른편으로 꼬고 글자를 썼다. 명색이 전직 트레이넌데, 내 자식이 염려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첫째에게 얼마 전부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도록 독려하고 있다. 왼손으로 쓰면 글씨가 예쁜데, 오른손 글씨는 엉망으로 나온다고 툴툴댄다. 오른손을 쓰면 왼쪽 머리도 발달되어 더 똑똑해지리라 꾀어도 보았으나, 못 알아듣는 눈치라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쓰는 시간에 나부터 변화하기로 했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말해 뭐 할까. 나의 왼손 글씨는 첫째의 오른손 글씨만 못하다. 한 획을 긋는 데에도 펜이 자꾸 궤도를 벗어나서 한 글자 한 글자의 마감이 망나니 칼춤 추듯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나마 제대로 글자를 적으려면 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최대한 몰입한 상태로 해야 한다. 주먹너머의 글자를 상상하며 써야 하는 건 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방 피로해져서 열 글자 적으려던 걸 다섯 글자로 최대한 간결하게 적는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막 중년에 접어든 수다 쟁인데 왼손잡이인 나는 헤어진 첫사랑을 만난 듯 과묵하다.
너의 오른손도 이렇듯 고된 여정을 가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유로운 너의 왼손만큼, 글을 적는 너의 오른손도 차차 자유로워지길. 함께하는 나의 왼손일기가 너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