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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Feb 11. 2023

천기누설 소방보살

 올해로 현장직 7년 차다. 윗분들에 비하면 아직 하룻강아지 수준이지만, 내외부적 컨디션에 따라 그날그날  무슨 사건 사고가 터질지 대강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절반 이상 맞는다(이만하면 돗자리 펴도 되지 않을까). 더해서 일하는 동안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징크스도 생겼는데, 미신으로 묻어두기엔 통계적으로 현실화되는 일이 너무 잦아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1. 똥은 집에서 누고 와라- 똥을 누는 행위를 한자로 표현하면 출동(出똥)이다. 변기에 앉아 막 일을 치르는 순간 출동이 걸린다.


2. 흐린 날을 조심해라- 흐린 날엔 심혈관계 응급, 특히 심정지가 많다. 출근하면서 구름 낀 하늘을 마주한다면 그날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3. 맑은 날을 조심해라- 맑은 날엔 자살자들이 많다. 보통 집 안에서 사고가 터지지만,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투신하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다.


4.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비는 꼭 그날 만져봐라- 하늘이 내리는 일종의 계시다. 예를 들어 유압장비가 괜히 만져보고 싶다면 꺼내서 조작법을 재차 숙지해라. 그날은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터져서 자동차 펜더(fender)를 자르거나 찌부러뜨릴 일이 생긴다.


5. 한가하다고 말하지 마라- 바빠진다.


6. 바쁘다고 말하지 마라- 더 바빠진다.


7. 식사 메뉴로 짜장면을 시키지 마라- 불거나, 식거나, 쉽게 상태가 변하는 식사메뉴를 배달시키지 마라. 포장을 뜯는 순간 출동이 걸려서 곤죽이 된 짜장면이나 식어빠진 국밥을 먹게 될 것이다.


8. 야식 먹지 마라- 먹은 만큼 일이 터진다. 정 배고프면 사발면 하나 정도로 타협해라. 치킨, 피자, 족발 따위를 먹었다간 밤샐 각오를 해야 한다.


9. 퇴근 직전에 집에 전화하지 마라- 아내나 아이들에게 곧 만나자고 살갑게 인사하며 전화를 끊는 순간, 출동이 걸린다.


10.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해라- 마악 임용된 신임 소방관들이 넘치는 자부심을 주체하지 못해 자주 범하는 실책이다. 주황색 소방 유니폼은 사고를 부르는 옷임을 명심해라. 그대로 입고 퇴근하다가 꼭 접촉사고가 나거나 남들과 시비 붙을 일이 생긴다. 등짝에 119를 매달고 주먹다짐할 배짱이 있다면 굳이 갈아입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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