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는 내 딸에게

by 백경

여덟 살 첫째야, 그리고 여섯 살 둘째야. 너희가 이 글을 읽는 건 아마도 이십여 년 뒤가 되겠지. 그때까지 아빠가 너희 곁에 발붙이고 있다면(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내가 하는 일 때문에 혹시 모르니) 직접 보여줄 거고, 아니라면 엄마 편을 통해서 전해질 거야. 아빠는 다른 건 잘 못해도 우리 가족은 변함없이 지켜낼 자신이 있어서, 그걸 보고 자란 너희들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리란 행복하고도 열불 나는 상상을 곧잘 한단다. 한참 남은 일을 가지고 벌써부터 이야기를 하냐고? 그 시간 뒤의 아빠는 지금의 아빠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아서 그래. 몸이 낡은 만큼 마음도 낡아서 낡은 잔소리를 끝도 없이 늘어놓을까 봐. 그래서 조금이나마 젊을 때 너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가 될 일에 대해 조언을 하려는 거니, 부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내 딸아. 성실한 남자를 만나거라. 바탕이 성실한 사람은 너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란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책을 읽는 사람이고, 일하는 동안에는 불평이 없고 감사가 넘쳐서 주변에 귀감이 되는 사람이란다. 의미 없는 술자리나 얄팍한 관계라면 질색을 해서, 퇴근하면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하는 사람이야. 대부분의 남자들은 본바닥이 망나니라 목줄을 팽팽하게 쥐고 있지 않으면 헛짓거리를 하기 마련인데, 성실한 사람은 오랜 아내와 함께 일구어 낸 빛나지 않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스스로 노력한단다. 그렇게 한 켜, 한 켜 성실한 시간들이 쌓였을 때, 네 가정은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풍성해질 거야. 그건 기름진 땅에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일이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거라. 말이 앞서는 사람들은 곁에 두면 재밌을지는 몰라도 대부분 그릇이 작아서 네 말을 마음에 담지 못한단다. 그런 사람들은 제 할 말만 하거나 좁은 속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습관적으로 남을 가르치려 들지. 깊이 있는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야. 평생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데 높은 벽 위에 걸린 확성기 같은 남자랑 함께라고 상상해 보렴. 하지만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르단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거울삼아서 자신의 모난 부분을 다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음씀이 넓고 겸손한 사람일 가능성이 커. 아빠는 그런 남편을 둔 여자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위에 말한 두 가지만 갖춰도 합격점을 주겠지만, 사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또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기도 하고, 사람을 보는 내 눈이 달라지기도 해.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도 중요하지만 사실 어떻게 함께 사느냐가 더 중요한 이유란다.


다정한 말씨를 쓰거라. 남자는 나일 먹어도 엄마를 찾는 짐승이라 포근한 말과 따뜻한 품에서 안정감을 찾는단다. 어쩌다 못난 모습을 보이는 남편에게 독을 품은 말을 건네지 말고 보통 때보다 더 사랑을 담아 말을 해야 해. 그러면 남편이 너의 귀함을 마음 깊이 새기고 한층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거란다.

늘 함께 건강을 유지하거라. 배우자가 아프면 그것만큼 맘이 쓰이고 지치는 게 없단다. 아무리 상대방이 예뻐도 건강을 잃는 순간 일상이 지옥으로 바뀌는 거야. 그래서 행복한 가정이 무너지는 걸 아빠는 일하면서 수도 없이 보았어. 가능하면 밥은 집에서 만들어 먹고, 궂은날이나 맑은 날을 가리지 말고 함께 산책을 나가는 습관을 들이거라. 평생 그렇게 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거야.

네 맘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 이 모든 일을 실천하고 살더라도 너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질 수 있단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단다. 네가 고른 사람이 철저한 구제불능일 수도 있고, 아니길 바라지만 상대방의 눈에 내 딸이 구제불능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 어떤 사건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시절의 변덕에 따라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어. 일단 노력으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확실한 판단이 선다면, 그래, 굳이 결혼을 유지해서 네 스스로를 평생 연민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결혼 이전에, 누군가의 아내이기 이전에, 나의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고 그 자체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으니까. 너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거란다.


아니나 다를까 잔소리가 길어지는 걸 보니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글을 쓰는 게 다행이란 생각마저 드는구나. 글을 적는 와중에도 늙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이만 줄여야겠다. 돼지고기 삶아놨어. 아빠 저녁에 일 나가니까 있다가 엄마랑 맛있게 먹으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