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반장선거 직전이었고, 후보로 출마예정이던 한 친구의 어머니가 큼지막한 박스 두 개를 교실 문 안쪽에 쌓아 두었다. 박스에선 생전 듣도 보도 맡아도 못 본 냄새가 났다. 진하고 걸쭉한,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에선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가 없는 향취였다. 고기와 버터 냄새가 났고, 구운 빵과 마요네즈, 제조법을 알 길 없는 달착지근한 소스의 마법 같은 냄새가 한 데 어우러졌다. 불고기 버거였다. 요즘이야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라면 하나 같이 불고기 버거를 메뉴판에 끼워 넣지만 라떼는 달랐다. 불고기 버거는 오직 한 곳만 팔았다. O데리아 불고기버거. 그것이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맛본 햄버거였고, 지구상에 이런 맛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 나이가 서른을 넘기는 동안 더더욱 풍요로워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미식의 나라가 되었다. 집에서 몇 걸음만 걸어 나가도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미국, 인도, 독일, 터키 등등등 세계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누워서 핸드폰 어플만 조금 만지면 그 음식들을 집 안에서도 맛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맛에 대한 호기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기대 또한 사라져서 일종의 무욕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대도시에 살면 조금 사정이 달랐을지도 모르나, 내 경우엔 고향땅에서 나고 자라 대학시절 잠깐을 빼면 밥벌이도 고향에서 하는 중이라 더더군다나 그랬다. 맛집이 없는 건 아닌데 다 아는 맛이었다. 어린 시절 환상의 불고기 버거 같은 끌림은 더 이상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5년 전 요맘때,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이었다. 출동을 나갔다가 구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익숙지 않은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래된 세탁소가 자리한 낡은 건물, 임대합니다 딱지만 줄기차게 걸려있던 자리에 빵집이 하나 생겨 있었다. 마침 점심때를 놓쳐서 라면으로 때울 판이었는데 호기심이 동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테리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숨길 수 없는 예술혼이 가게 곳곳에서 묻어났다. 어쩌면 빵도 그러하리라 기대가 되었다.
소방서에서 오셨구나. 반기는 사장님은 처음엔 나와 비슷한 연배인 줄 알았다가 나이를 알고 깜짝 놀랐다. 눈까지 웃는 환한 웃음 덕이었다. 빵 먹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어렸을 때 꿈이 소방관이었어. 몸이 약해서 접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안 그럴 텐데 프랑스에선 소방관 남자친구 하면 최고야. 사장님은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듯 리드미컬하게 말을 이었다. 미술 관련 일을 하던 사장님은 어느 날 갑자기 빵에 꽂혀서 르꼬르동블루에 빵을 배우러 갔단다.
커피 한잔하고 가요. 거절하지도 못하게 머그컵에다 인원수대로 커피를 담아 오며 말했다. 관할 내였고, 무전기도 챙겼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사장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왜? 소방관은 커피도 마시면 안 돼? 출동 걸리면 나가면 되잖아.
이론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여유 부리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
네. 커피 맛있네요.
맛있지? 빵도 먹어봐요. 종업원이 그릇에 빵까지 담아서 내어왔다. 당연히 구매한 것과는 별개였다. 소방관 타이틀 하나 달았다고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송구했다. 그래도 배는 고파서 빵은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먹은 빵은 빵이 아니었다고.
앙버터였다. 쫀득하고 폭신한 빵이 입을 벌리고, 그 안을 채운 팥앙금 위에 네모진 덩어리 버터가 기차처럼 일렬로 뚝뚝 올라가 있었다. 달지 않고 진하면서도 향긋했다. 드문드문 빵 표면에 흩어진 굵은소금 몇 조각이 요새 말로 ‘킥’이었다. 은은한 단맛의 우주에서 경쾌한 짠맛이 별처럼 팡팡 터졌다. 빵이란 본래 간식이 아니라, 온전한 한 끼의 식사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초등학생 때 먹은 불고기 버거 이후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동안 둔감했던 나의 혓바닥이 앙버터로 하여금 비로소 새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출동 마치고 허기진 와중이라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게 안 책장에 하루키 아저씨의 소설이 빼곡했던 덕일지도 모른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빌 에반스 덕분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싱그럽게 창문을 두드리던 봄비가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비 내리던 그날 이후로 앙버터는 늘 맛있었다.
이따금 쉬는 날 앙버터를 사러 빵집에 간다. 장사가 잘 돼서 분점까지 내는 바람에 사장님 얼굴 보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그래도 진하게 내린 커피와 함께 내 인생의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어디선가 흥흥흥 사장님의 콧노래 같은 목소리가 들리고, 앙버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마저 든다. 구릿빛 탄탄한 몸에 단팥처럼 스윗한 미소, 버터처럼 진한 마음을 가진 남자. 눈물맛 인생의 소금기도 어려 있어 단짠단짠 자꾸 땡기는 사람. 내가 그런 앙버터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