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고기 장’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면 시내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있는 육가공 공장에 자주 들른다. 유통 과정이 하나 줄기 때문에 100그람 당 몇 백 원이라도 싸고, 공장주가 농장과 직접 계약을 해서 고기 질도 우수하다. 크고 테가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데, 언젠가 우리 집은 내가 밥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신랑 너무 잘 만났다, 부럽다, 칭찬하는 걸 듣고 싶어서라도 간다. 무엇보다도 여기엔 일반적인 정육점에서 구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것도 공짜로.
사장님, 백포 있어요?
네, 네, 챙겨드릴게요. 껍데기는요?
주시면 좋죠. 감사합니다.
맞다, 오돌뼈도 있어요, 드려요?
네, 네. 저녁엔 찌개 끓여야겠다. 함께 온 와이프를 보며 씩 웃으며 말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는다. 고기는 겨우 10만 원어치 될까 말까 사면서 사장님 뒷주머니 다 털어오는 기분이다. 껍데기는 한 번 삶아낸 뒤에 볶아먹고, 오돌뼈는 김치 넣고 뼈가 무를 때까지 푹 끓여서 김치찌개를 만든다. 하이라이트는 처음에 말한 백포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소한 말일 텐데, 껍질이 붙은 돼지 뱃살을 의미한다. 즉, 돼지비계다.
돼지비계는 따로 모아두면 허여멀건한 게 영 식욕을 돋우는 모양이 아니다. 게다가 이걸 뭘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직화로 구웠다가 눈앞에서 불바다를 구경한 일도 있고, 그냥 물에 넣고 김치찌개 끓였더니 느글거려서 다 버리기도 했다. 수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적절한 조리법을 찾았으니, 바로 다음과 같다.
달군 팬에 돼지비계를 넣고 기름이 배어 나올 때까지 뒤적이며 볶는다. 기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다진 파 넣어 파기름 내고, 간장, 마늘, 고춧가루, 미림, 취향에 맞게 야채 넣어 볶다가 물을 조금 부어 졸이듯이 익힌다. 주의할 점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지 않으면 비계에 붙은 껍질이 뻥 하고 튀어서 얼굴에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센 불로 조리하지 않아야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렇듯 더럽게 까다로운 재료지만 일단 요리가 되면 그 맛은 돈 주고 사는 고기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앞다리보다 부드럽고, 항정살보다 쫀득한 매력이 있다. 다소 묵직한 맛을 함께 넣어 볶은 야채가 잡아주기 때문에 느끼하지도 않다.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많이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몇 조각만으로도 필요한 열량이 확보되어 몸이 금세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낸다.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 짧은 게 아쉽지만 어찌 보면 과식을 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참 여러모로 훌륭한 돼지비계가 아닐 수 없다.
비싸고 맛있는 재료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대충 구워도 맛있고, 끓여도 맛있고, 날로 먹어도 맛있다. 태우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돼지비계 같은 재료는 다르다. 재료의 단점을 극복하는 법을 고심하고, 조리하는 내내 신경을 써야 비로소 먹을 만한 음식이 된다. 그 모양이 꼭 내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넉넉하지 않아서 매일이 고민의 연속인 삶, 그래서 요리 솜씨가 늘 듯 살아내는 솜씨도 느는 기특한 삶이다. 물질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은 이 맛을 모른다. 그런 부자들은 아마 돼지비계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오늘도 주방에서 돼지 껍데기를 삶고, 오돌뼈를 끓이고, 돼지비계를 볶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부자들은 모르는 맛을 아는 우리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