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말고 햄버거

by 백경

그날 오후에는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예정일이 한참 남아서 긴장감이 없었다. 둘째는 내가 소방학교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는 중에 아내의 뱃속에 자리를 잡았는데, 소식을 알게 된 학교 동기들은 하나같이,

짐승.

그새를 못 참고.

여자의 적.

등등등의 말로 아내에 대한 나의 넘치는 사랑을 칭송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씨와 밭이었다. 첫째가 외로워 보여, 이제 둘째 만들까? 물었고, 그럽시다 답이 돌아왔고, 첫째가 그랬듯이 둘째도 바로 얘기가 나온 그날 세계 정상급 클라이밍 선수처럼 엄마의 자궁에 철썩 달라붙었다. 맘만 먹으면 예외라는 게 없어서 묶어버려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수술받은 직원이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정관이 두 개가 아니고 한 개가 더 서비스로 달려 있었다는 말에 수술 생각을 접었다. 결코 칼 댔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이날 점심은 햄버거로 해결하기로 했다. 내 생일이었지만 뭐 거창하게 차려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생일인 걸 몰랐을 수도 있다. 산부인과 근처의 버거킹에서 이것저것 끼워 넣은 크고 비싼 세트메뉴 두 개를 시켰다. 아내는 임신했다고 먹성이 좋아지진 않았다. 한 절반쯤 먹고 나머지는 내게 넘겼다. 이때나 지금이나 내 다이어트의 주적은 아내가 분명하다. 남은 햄버거를 입에 욱여넣고 있는데 아내가 뜬금없이 말했다.

나올 것 같아.

뭐, 지금?

응.

초산은 진통이 오래지만 경산모는 느낌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어어어? 하는 사이에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머리를 내민다. 아내가 분만실로 들어간 지 딱 두 시간 만에 둘째가 나왔다. 2시 45분. 우연이라고 하기엔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아빠와 생일이 같고, 나온 시간도 정확히 일치하는 아이였다.


며칠 전 둘째 생일엔 부모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대강 배달음식으로 상차림을 하려고 했는데 뭔가 아쉬웠다. 미역국이라도 끓이려 했더니 엄마가 벌써 선수를 쳐서 생일 전날 냄비째로 들고 왔다. 의미 있으면서도 만들기 쉽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 잘 먹는 음식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떠오른 게 햄버거였다. 무려 둘째가 엄마 뱃속에서 맛을 본 뒤 서둘러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든 음식이었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다짐육을 반반 섞은 뒤, 계란 한 알, 양파 한 알은 갈아서 넣고, 소금 후추로 심플하게 간을 해서 치대어 패티를 만들었다. 빵은 기성빵집에서 파는 모닝빵으로 햄버거 빵을 대체했다. 상추, 얇게 썬 양파, 루꼴라도 몇 장 넣고 그 위에 크림치즈를 올렸다. 스테비아 토마토도 얇게 썰어 넣었는데 꺼내 둔 동안 발효가 된 건지 토마토에서 막걸리 같은 맛이 났다. 소스는 하인즈에서 나온 햄버거 소스를 사용했다. 상에 내기 전에 먼저 시식을 했는데 ‘막걸리 향이 은은한 건강한 빅맥’ 맛이었다. 고개가 절로 갸우뚱했다. 그렇다고 이미 다 만들어진 걸 돌이킬 수는 없었다. 식구들이 나만큼 예민하지 않길 바랐다.


셰프의 자신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둘째는 좋아하는 통닭과 감자튀김도 제쳐두고 햄버거부터 집었다. 마치 햄버거가 세상과 맞짱 뜨기 전 최후의 만찬이었음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래서 앞으로 네(내) 생일엔 햄버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국에서 아빠를 따라온 너, 굳이 아빠와 꼭 같은 시간에 맞춰 태어난 너를 위해서.

그리고 스테비아 토마토는 넣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