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이 밥 굶긴 날

by 백경

늦잠을 자서 아침 준비가 늦었다. 아침 메뉴는 간장 계란밥에 엊저녁에 끓인 김칫국. 아이들 눈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생 짬바가 두 해는 더 쌓인 첫째는 그래도 군말 없이 수저를 들었다. 둘째가 문제였다. 입을 비죽 내밀며, 나 이거 싫어하는데 하고 뇌었다. 그러자 내가 미처 뭐라 할 새도 없이 첫째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럼 먹지 마.


마치 아빠가 아침부터 수고한 걸 두고 볼멘소리냐 하는 것 같았다. 둘째는 순간 기분이 상했는지 팔을 휘두르며 언니의 국그릇을 엎었다. 첫째는 맞서 싸울 생각도 않았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젓는 폼이 꼭 나 같았다. 반찬 투정이야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밥상머리가 난장이 된 다음에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오늘은 아침 먹지 말고 유치원 가. 말하며 계란이 담긴 둘째의 밥그릇을 뺏었다. 둘째는 나라 잃은 사람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암만 바빠도 애 밥은 안 굶겼다. 아침 밥상에 시리얼 같은 걸 올린 일도 없다. 가끔 빵을 줄 때는 있었는데, 그마저도 계란물을 입혀 버터에 굽고 나한과(열량이 없는 자연 감미료)를 뿌려 우유와 함께 냈다. 그런 아빠가 밥그릇을 뺏었으니, 애 생각엔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아빠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냥 내 밥을 굶고 말지.

네가 지금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말해 봐.

언니한테 못 되게 했어요.

또.

소리 질렀어요.

또.

모르겠어요.

밥도 감사한 마음으로 안 먹었잖아.

네.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가.

어쩌면 이때까진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재차 밥 먹지 말고 가란 말에 둘째는 또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울지 말고, 아빠 지금 화난 거 아냐, 그래도 오늘 아침밥은 안 줄 거야. 아빠의 결심이 확고하단 걸 느꼈는지 둘째는 그제야 울음을 목 뒤로 넘겼다. 이 닦고 와. 말하자 잠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침밥 대신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썼다. 애 밥은 굶기고 커피를 마시는 게 맞는가도 싶었다.


이날은 아이들이 귀가하기 두 시간 전부터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둘째가 유치원 농장체험에서 가져온 알이 굵은 감자가 있어서 그걸로 요리를 하기로 했다. 감자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고, 강판에 간 뒤에 물이 생긴 걸 그릇에 따라냈다. 잠시 기다렸다가 물아래 가라앉은 녹말과 감자 간 것, 전분을 섞어 반죽을 만들고 둥글게 옹심이를 빚었다. 옹심이를 물에 데치고, 버터 두른 팬에 굽고, 생크림, 우유, 치즈, 베이컨, 양파, 삶아 낸 파스타를 함께 넣고 끓였다.


요리가 거의 완성될 즈음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돌아왔다. 우와, 이게 무슨 냄새야. 우와. 아침에 있었던 일은 벌써 잊었는지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탄성을 연발했다. 손 씻고 와. 말하는 내가 되려 가슴이 뛰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요리였다. 최근 들어 가장 자신작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손에 물기가 다 마르기도 전에 감자 옹심이 크림파스타에 젓가락을 찔러 넣었다. 사진을 좀 예쁘게 남기고 싶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식탁은 메뚜기 떼가 훑고 간 듯 삽시간에 빈 그릇만 남았다.

맛있었니? 두 딸을 보며 물었다.

네. 정말 맛있었어요.

지인짜 맛있었어.

그래. 맛있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