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리와 미꾸라지

by 백경

요맘때 아내는 비염과 감기몸살을 달고 산다. 맑은 날엔 꽃가루가 날려서 걱정이고 흐린 날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려서 걱정이다. 나야 워낙 둔해서 4월부터 반팔 차림인데 아내는 여름이 기지개를 켜기 전까지 두 겹 세 겹 씩 옷을 껴 입는다. 껴입은 옷이 어쩔 땐 덥다고 난리고, 또 어쩔 땐 춥다고 난리다. 툴툴대는 모양이 그래도 밉지 않은 걸 보면 아직까지 내 눈에 예쁘긴 한가보다.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하느라 파리해진 얼굴을 하고, 또 콧구멍 양쪽으로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으면 여간 마음이 짠한 게 아니다. 그럴 때면 으레 뜨끈한 국물을 먹여야겠다 생각이 든다. 고심해서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아플 땐 돼지 국밥은 부담스럽고, 짬뽕 국물은 속이 부대낀단다. 남편은 감기 걸리면 라면에 청양고추 퍽퍽 쓸어 넣고 한 그릇 뚝딱이면 감기도 뚝딱인데 내 마누라는 어지간히 까다롭다. 까다로운 여자가 남편은 왜 대충 골랐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아내의 소울푸드나 다름없는 음식이 있으니, 다름 아닌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이상한 음식이다. 생선이든 고기든 보통 통으로 넣어 국이나 탕을 끓이기 마련인데, 이건 삶아서 갈아낸 걸 넣고 끓인다. 그래서 탕이랍시고 식탁에 오르는 걸 보면 단배추니 대파니 부추니 하는 갖은 야채에 된장 고추장 양념까지 뒤범벅이 되어 거의 죽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뚝배기에 웬 진흙을 한 국자 퍼다 끓여다 놓았나 생각할 법한 비주얼이다. 그러나 갈아 만든 미꾸라지 탕이라는 사전 지식에 더해 진흙탕과 다름없는 생김새를 모두 극복하고 일단 한입 맛보면, 그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진하고 구수하며 향긋하다. 대체 불가능한 별미다.

젠피를 많이 넣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내 경우엔 아주 가끔을 제외하고 넣지 않는 편이다. 젠피의 강렬한 향은 논바닥에서 뒹구는 추어 특유의 흙냄새를 잡아줄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섬세한 추어의 풍미를 반감시키는 것 같다(개인적인 의견이니 분개하는 사람이 없길).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흙냄새가 사라지면서 탕 속의 미꾸라지가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에서 내어 준 그대로의 뚝배기에 뭐 더 넣지 않고 밥만 말아서 몇 술 뜨고 있으면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추어탕이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젊은 우리는 미꾸리와 미꾸라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종이 다르고 사는 곳도 조금 다르지만, 추어라는 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 별 볼일 없는 인생. 그냥 사람. 부자도 아니었고 나이 서른이 넘도록 이루어 놓은 것도 없었다. 나는 젓가락, 당신은 숟가락만 들고 결혼을 했으니 열길 진흙탕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우리는 매일 전쟁처럼 싸웠다. 그러다 밀어낸 서로를 찾지 못하면 마음이 다급해 열심히 몸을 휘저었고, 상대방의 몸이 닿으면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열렬히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서로의 살냄새를 허파 깊숙이 빨아들였다. 진흙탕 같은 매일의 냄새도 함께 빨아들였다. 밥벌이할 직장이 생기고 아이들이 당신 덕으로 참 예쁘게도 커준 지금은 진흙탕을 조금 벗어나 이름 모를 강 하류 어귀에 살고 있다. 서로의 지느러미를 붙들고 추는 춤이 언젠가는 우리를 너른 바다로 이끌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다시 진흙 속으로 던져 넣을 수도 있다. 뭐가 되었건 간에 함께라면 괜찮다. 영영 함께라면 바다건 논바닥이건 끝까지 잘 살아낼 자신이 있다.


추어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밥을 반 공기만 덜어 걸쭉한 국물에 살짝 담가 먹는 걸 좋아하고, 아내는 국물에 잔뜩 불린 밥을 한 술 떠서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한다. 밥이 줄어들면 깍두기 국물을 내리 끼얹는 그녀가 아직 이해되진 않지만, 요즘은 사랑으로 보듬어 주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