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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Feb 27. 2023

그녀에게 초크슬램을 당했다

 아침에 아내가 물었다.


“어제 왜 소리 지르면서 나갔어? ”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는 중간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두 딸의 덩치가 크면서 이젠 같은 자리에 눕기가 버거워졌지만, 여전히 잠들기까지는 엄마 아빠가 곁에 있어주길 원한다. 보통은 아이들이 낮은 숨을 쌕쌕 쉬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몸이 피곤하거나 어디가 아플 땐 온돌방의 온기에 그대로 함락되어 좁은 방에서 서로를 뭉개며 아침까지 잠이 들어 버리곤 한다. 아직 감기가 덜 나아서 어제도 그런 전개인가 싶었다.

 

 “여기를 걷어찼어. ”


 오른쪽 경동맥이 있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잠버릇이 유독 고약한 둘째가 새벽 즈음엔 처음 누운 자리에서 90도 회전한 상태로 자리를 잡았고, 나는 방구석으로 밀려나며 잠을 깨었다. 이제 안방으로 건너가 편히 잠드는가 싶었는데, 둘째가 무어라 중얼거리며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내가 몸을 일으킬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뒤꿈치를 목에 꽂아 넣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상황 파악보다는 몸을 피해야 한다는 본능이 더 앞섰다. 그래서 말 그대로,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애들 키우다 보면 그야말로 별 일이 다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별안간 들었다. 지금이야 육체적인 초크슬램이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마음의 초크슬램이 비일비재할 터였다. 8살 딸아이의 말에도 종종 상처를 받는 내가 머리가 큰 두 딸의 질풍노도 같은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 의구심을 떨쳐내기 위해선 내 마음의 경동맥을 내려치는 그녀들의 말과 행동이 어떤 악의에서 비롯하지 않을 것임을 순전하게 믿고 또 그 충격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나도 좀 같이 크게, 아이들이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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