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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13. 2023

새벽 4시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습니다

우리 집은 홋카이도에 있어요

 들뜨고 단내가 나는 마음은 묵혀서 며칠 뒤에 요리처럼 내놓는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레시피가 정교해지기 때문에 대개는 오래 묵힐수록 그럴듯한 모양이 된다. 예쁜 글이 된다. 나는 속이 좁아서 그런지 좋은 마음을 모셔두고 글이라고 할 법한 게 나올 때까지 잘 기다리질 못한다. 쓴 걸 두고 라면 같다고 며칠 전인가 말한 건 바로 그래서다.


 좋은 마음도 그러한데, 핏기가 채 가시질 않아서 너무 아프거나 황망한 마음은 더더욱 오래 쥐고 있질 못한다. 그런 것들은 날을 잘 벼린 회칼로 조심히 떠서 적당히 차가운 유리접시에 담아내야 하는데, 일단 칼을 쥔 작자의 솜씨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데다 뜨거운 손으로 횟감을 쥐느라 벌써 살이 다 뭉개지고, 내 집 찬장에 있는 거라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담아내는 연두색 바탕 하얀 점이 점점이 박힌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다. 그래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속에서부터 썩은 내가 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렵게 어렵게 칼을 쥔다. 까만 알커피 하나를 까서 컵에 담고 물을 붓는다. 노트북을 연다.


 관할 내 경찰 지구대에서 연락이 왔다. 어지럼증 환자를 하나 모시고 있으니 와서 좀 봐달라는 이야기였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지구대에서 보호하고 있던 환자는 30분 전에 교회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있던 걸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신고를 했다. 80대 여성이었다. 염색한 지 오래되어서 거의 백발처럼 보이는 숏커트에 고집스럽게 다문 입과 눈썹문신이 더해져 꼬장꼬장한 인상을 주었다. 다른 생체징후는 정상범위였는데 수축기 혈압이 170을 넘나들었다. 나이 먹으면 혈관의 탄력도 줄어서 자연스럽게 혈압이 높아지는 걸 감안하더라도 신경 쓰이는 수치였다.


 펴엉생 이러은 적이 어써 써요.


환자가 입을 열자 어딘지 억양이 낯선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일본 드라마 등장인물이 한국어를 어설프게 익혀서 말하는 듯했다.


 환자분, 제일 불편한 게 뭔가요.

 머리가 하프흐고, 허지러워요.

 드시는 약 있나요, 고혈압, 당뇨 뭐 그런

 어으써요.

 혈압이 좀 높게 잡혀요, 병원 모셔다 드릴게요.

 병원 가 보니리 어으써요.

 가야 돼요.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는 중환이 아니라 3시간은 대기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급차에 누워있던 환자에게 말했더니 얼굴을 구기며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었다.


 센세님 나 병원 안 가래요.

 위험할 수도 있다니까요.

 안 가래요, 갠차나요.


 이후로도 10여 분을 더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 할머니였다면 버럭 소리라도 질러서 병원에 묶어 두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가 정한 타인의 경계는 공고했고, 그걸 임의로 무너뜨릴 자신이 없었다. 이송거부서(구급차 출동 시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지 않을 경우 환자의 동의가 있었음을 서명을 받아 확인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보통 면피용으로 환자들에게 들이미는 그것이 그날따라 더 구질구질해 보였다. 짜증이 났다.


 센세님.

 왜요.

 내가 다 나으믄 마신 거 사주께요?

 그러지 마세요.

 사라으미 왜그러케 낸전해요.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란 말에 그녀는 간식 먹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우리 애들처럼 기뻐했다. 진한 눈썹 문신 너머에 숨어있던 진짜 웃음이 보였다. 꼬장꼬장한 인상은 평생 병원 한 번 찾지 못한 그녀의 여린 속내를 감추기 위한 구멍 난 방패처럼 보였다. 경찰 지구대 근처에 살던 그녀를 집에서 멀찍이 떼어낸 셈이라 운전을 맡은 직원과 상의해서 귀가시키고 돌아가기로 했다. 새로 생긴 농협 건물 앞이라던 그녀의 집은 알고 보니 건물 뒤편에 있었고, 부축해서 허름한 빌라 2층까지 가는 동안 두세 번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병원 가자고 한 번 더 입을 뗐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 문이 열렸다.


 내가 꼭 마신 거 사주께요?

 이상하다 싶으면 119 전화하세요.

 센세님.

 네.

 우리 집은 홋카이도에 있어요.

 그렇군요.

 아주 큰 집이에요.


 문이 닫혔고, 나는 한 삼십 초쯤 서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그녀가 쓰러져서 어디 부딪히는 소리라도 들릴까 싶어서, 그래서 병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마침내 말할 것 같아서 그렇게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몰래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내 마음 편하자고. 글로 써서 땅에 묻으면 더는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암만해도 착각이었던 것 같다. 비우고 나니 더 커졌다. 홋카이도에 가서 버리고 오면 조금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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