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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20. 2023

헌금으로 OOO를 낸 여자

 교회 가서 내내 졸았다. 전날 새벽 출동 때문이었다. 각각 60대와 30대인 모녀가 함께 사는 원룸에서 어머니 쪽이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천식이 있다고 했다. 화장실 앞에 누워 있는 걸 일으켜 세워서 들것으로 옮겼다. 방안에 덩그러니 놓인 식탁 겸용 밥상에 성경책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동안 비강으로 2리터씩 산소를 주자 90 초반이던 산소포화도가 99까지 올랐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함께 온 딸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몇 번을 더 이야길 하길래 내 속이 답답해서 말했다.


 진료 보셔야 해요.

 이제 괜찮은데.

 산소 끊으면 또 숨찰 지도 몰라요.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 자꾸 왜 집에 가신다는 건데.

 내일 교회 가야 해요.

 네?


 아내의 손에 이끌려 매주 교회를 찾는 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신이 기적을 베풀어서 갑자기 병이 나을 수도 있다 치더라도 당장 그녀를 구급차로 싣고 온 건 나였다. 암만 자기가 신이라고 떠들어대는 게 유행인 시대라곤 하지만 나는 단연코 신이 아니다. 내 차로 데려온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온전히 인간인 내가 뒤집어써야 한다. 몇 년 전엔 만취한 남성 하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 다음날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남자의 가족으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받은 일도 있었다. 그때 현장에 있던 경찰이 남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귀가를 원했노라 증언해주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징계감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환자를 설득해서 병원에 넘겨주었다.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스무 번쯤 의식을 잃었다. 설교가 끝나자 헌금 바구니를 들고 금색 자수가 새겨진 성의를 입은 신도들이 기다란 의자 사이사이를 오갔다. 아내는 가난했던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편에 무리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만 헌금을 했다. 지금은 오천 원이고, 내가 소방서에 다니기 전엔 이천 원이었고, 결혼하기 전엔 바나나도 넣었다. 진짜 먹는 바나나 말이다. 그것도 한 송이 통째로 넣은 것도 아니고 하나만 떼어서. 어디서 신성모독이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헌금으로 낸 바나나에 아내의 진심이 담겼으리란 것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건 그녀가 나와 만나기 시작한 아주 초반에, 처음 싸 주었던 삼단 도시락 덕분이다. 맨 위칸엔 다섯 공기쯤 꽉꽉 들어찬 맨밥이, 둘째 칸엔 무덤처럼 쌓여 있던 덜 익은 호박전이, 마지막 칸엔 집에 남은 걸 긁어온 듯 달랑 초코파이 두 개가 들어 있었던 빛바랜 그녀의 플라스틱 도시락. 그러니까 바나나도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성경책 사이에 넣어 곱게 다린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남들 다 보이게 헌금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 들으라는 건지, 다 들리게 내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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