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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27. 2023

한입만씨의 근황

 출근길의 가벼운 교통사고 출동이었다. 사람들은 굳이 다친 곳이 없어도 구급차를 불렀다. 그런다고 들이받은 쪽이나 받힌 쪽이나 유리해지는 게 없는데 일단 부르고 보는 것 같았다. 상황실로부터 구조상황이며 중환자가 없으니 안전 운행하라는 무전을 받았다. 속도가 줄어들자 마음이 놓였다.


 현장에 도착할 즈음 멀찍이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구급차나 경찰차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가까워진 소리가 정신없이 고막을 때렸고 동시에 노란색 경광등이 백미러를 비췄다. 사설 렉카였다. 렉카 사이렌 소리를 구급차에서 나오는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좌우로 길을 비켜줬다. 렉카는 연신 클락션을 울려대며 깜빡이도 넣지 않고 현장까지 내달렸다. 우리는 렉카보다 조금 늦게 현장에 다다랐다. 운전자가 렉카에서 내렸다. 검정 나시를 입은 덩치 좋은 남자였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얼굴이기도 했다. 한입만이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 매점은 내부가 비좁아서 야구 경기장에 있는 기다란 관중석 의자 같은 걸 바깥에 두었다. 그러면 학생들이 거기 쪼르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사발면이며 케첩을 바른 피카츄 돈까스 같은 걸 먹었다. 수업 중간중간에 먹었고, 점심 도시락을 싹 비운 뒤에도 먹었고, 하교하기 직전에 또 아쉬워서 먹었다. 돼지처럼 먹었는데도 낮이고 밤이고 열이 뻗쳐서 살이 찌진 않았다.

 한입만은 쉬는 시간이면 매점 바깥에서 나무젓가락을 들고 기다렸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사발면에다 젓가락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한입만


 단 한입만 먹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입만은 긴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사발면을 전부 한입씩 먹고 난 뒤에야 담배를 태우러 자리를 떴다. 어느 날은 내가 먹던 사발면에도 젓가락을 쑤셔 넣길래 녀석이 한입 먹는 앞에서 남은 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아무튼 도시라고 해봐야 비좁은 고향땅을 뜨지 않고 일한 덕분에 추억의 한입만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반갑기까지 했다. 물론 인사는 하지 않았다.


 통계를 보니 지난 십 수년간 물가가 상승한 것에 비해 법으로 정해진 렉카의 표준 견인운임은 그닥 오르지 않았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사설렉카의 난폭운전이 만연하다는 얘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먹고살기 어렵다고 불법이 당연시되는 건 아니다. 저가 배고프다고 남의 사발면을 한입씩 가져다 먹는 게 옳은 일이 아닌 것처럼. 특정 직업을 비방한다는 말이 나올까 싶어 한마디 하자면 이건 렉카의 문제가 아니고 한입만의 문제다. 한입만은 렉카 운전기사가 아니라 판검사였어도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다.


 다른 사설 렉카들을 제치고 일착으로 사고차량을 마주한 한입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얗고 넓은 팔뚝에 새긴 뱀문신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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