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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08. 2023

퇴근길

 구급차는 산등성이를 따라 느리게 달렸다. 고개를 두어 개 넘고, 내려와 산자락에 비뚜름하게 자리한 집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똥냄새와 묵은 볏짚 냄새가 아찔하게 풍겼다. 보호자가 먼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검정 등산바지에 자주색 바람막이 차림이었다. 얼굴은 나이를 먹었지만 자주 걷는지 군살이 없고 하체가 단단해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섰다. 태양을 마주한 커다란 병상에 산 채로 미라가 된 남자가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바치 볕에 바짝 마른 생선 같아서 잠시 죽었는가 하고 의심했다. 관자놀이가 움푹 들어가고 눈두덩 안쪽이 쑥 꺼진 모양이 사람 머리뼈가 사실 이렇게 생겼소 하고 말해주는 듯했다. 팔다리도 인체 해부모형에 거죽만 입혀놓은 것처럼 말랐는데 특히 골반께가 적나라했다. 양쪽 골반뼈 안쪽 아랫배가 자리해야 할 그곳은 마치 거대한 휴화산의 분화구 마냥 패여 있었다. 의외로 죽음 언저리를 배회하는 사람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보호자인 아내가 정성으로 보살피는 덕이라 생각했다.


 남자를 들것에 싣고 구급차 문을 닫았다. 그의 아내가 함께였다. 문을 닫아도 똥냄새가 차 안 그득 이었다. 공기정화기를 작동해도 창문 틈으로 소똥이며 닭똥이며 젖은 흙냄새가 끊임없이 밀고 들어왔다. 냄새는 산길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려니 했다. 남자는 폐암 말기로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예정이었다. 이송하는 동안도 산소포화도며 맥박이 오락가락이라 남자의 밭고랑 같은 가슴과 제세동기 모니터를 번갈아 예의주시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남자의 아내가 말했다. 누군가한테 묻는 말이었지만 답은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흰자위가 밀려든 눈물로 반짝였으나 초점이 없었다. 텅 비었다.  텅 빈 눈 가득 해골처럼 마른 당신의 남편만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대기환자가 많아 병원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구급차 내부 조명을 꺼드릴까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어두운 거 싫어해요. 그의 아내가 대신 답했다.


 근무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많이 밀렸다. 가다 보니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다. 차선 하나를 사고 차량들이 다 막아선 데다 득달같이 달려온 렉카들 때문에 더 어수선했다. 차선을 바꾸려다 사각을 못 보고 다른 차와 부딪힐 뻔했다. 아버지가 큰맘 먹고 천만 원이나 들여서 사주신 차다. 겨우 10만 킬로 남짓 탄 중고지만 상태가 좋아서 30만 까지는 탈 생각이었는데 서두르다가 목표의 반도 못 이루고 폐차할 뻔했다. 가슴 한 번 쓸어내린 뒤엔 느릿느릿 갔다. 다들 제 집 가기 바빠서 앞 차 엉덩이를 바짝 물고 벌건 물결로 한 몸이 되어 흘렀다. 신호 기다리는 동안 구름이 쪼개지고 그 틈으로 해가 불을 뿜었다. 어디서 소똥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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