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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16. 2023

늙은 우리

 남자의 집은 골목 끝에 있었다. 마른 주름처럼 갈라진 길에 듬성듬성 빛바랜 민들레만 즐비했다. 좁고 좁은 길 가장자리 물결처럼 늘어선 슬레이트 지붕에 부딪힐까 조심조심 구급차를 몰았다. 땅 끝에 닿은 것도 같았다. 양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오래전에 잊은, 전설마저 절벽 너머로 곤두박질치는 곳. 세상의 끝.


 남자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엊저녁부터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몸을 일으킬라 치면 눈이 핑핑 돌았다. 부축해서 구급차까지 가는 동안 무너졌다 일어섰다를 몇 번인가 했다. 심지가 짧은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마침내 들것에 실린 남자가 구급차에 올랐다. 곁에는 여자가 있었다.

 남자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20년 전에 심장에 스탠트를 박았고 올해 들어선 대장 용종을 8개나 제거했다. 모두 여자의 입에서 나온 설명이었다. 관계를 물었더니 젊은 시절에 함께 살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한 번씩 얼굴만 본다고, 친한 오빠와 동생으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남자는 병원 가는 동안 별 말이 없었다. 여자 쪽으로 부러 눈을 주지 않는 것도 같았다. 짐작이지만, 다리만 성했어도 여자에게 연락을 않았을 것이다.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늙은 나와 아내를 본다. 우리는 애 키운다고 점점 바빠서 젊은 거울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그러다 아이들이 스치듯 떠나고, 우리끼린 더욱 굳게 손을 그러쥔다. 일을 그만두면 푸드트럭을 하나 장만해서 여행과 더불어 소일하며 지낸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둘만의 시간이 어색하면서도 행복하다.  너무 늦지 않게 미뤄두었던 프로포즈도 한다. 다행히 늙어서도 우리는 종종 알몸이라 서로 하얗게 센 솜털을 하나하나 맨 손으로 빗으며 잠이 줄어든 밤을 위로한다. 당신 품의 진한 사진이었던 나는 따스함에 빛이 바래 겨우 윤곽만 남는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우리 둘만 또렷했던 시간의 서로를 기억한다. 그렇게 바다 끝까지 간다. 가서, 파도에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구급차가 병원을 향하는 동안 여자는 오랜 습관처럼 남자의 손을 매만졌다. 각각 다른 허공을 보는 두 사람이 어쩐지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집은 골목 끝에 있었다. 곁에는 여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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