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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28. 2023

구루뿌

 학기 초 너는 싱그럽게 화장을 하고,

 파스텔 톤 블라우스에

 하늘색 청바지를 입었지.

 목이 짧은 컨버스 신발마저 따사로웠어.

 포카리 스웨트 광고주가 너를 봤어야 하는 건데.

 뼈대가 얇은 전동 킥보드 위에

 하늘하늘한 너의 하얀 발목을 얹고서

 봄바람마냥 달렸지.

 마치 나는 것 같았어.

 아니, 그냥 날았나?


 여학생이었다. 봄을 맞아 연두색 새잎과 튤립과 철쭉으로 알록달록한 캠퍼스를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리다 사고가 났다. 언덕을 내려오던 중이었는데 마주 오던 사람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튕겨져 나갔단다. 이마에 굵은 사포처럼 찰과상이 생기고, 아래턱이 아스팔트에 찍혀서 길게 갈라졌다. 출혈은 많지 않았으나 흉이 질까 봐 염려가 되었다. 남의 얼굴 흉지는 걸 네가 뭐 하러 걱정하느냐 물으면 할 말은 없으나,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좀 그렇다. 타인의 삶에 대체로 관심 없는 나 같은 인간도 오지라퍼로 만든다. 여자 얼굴이라서 더 마음이 쓰였나 보다. 만약 내 딸이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당근마켓에 팔아 치울 자비심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로 킥보드는 고물상 행이다.


 눈물에 마스카라가 번져서 더 처연해 보였다. 헬맷이라도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학생의 앞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 연분홍색 구루뿌만 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안전보다도 멋과 미가 중요했던 여학생의 심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스스로 화를 자초했노라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현대의학이 학생의 예쁜 얼굴을 원래와 같이 빛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해 있길 바랐다.


 예쁜 얼굴은 보이지 않게 가려도 여전히 예쁘다. 봄날의 학생들이 구루뿌 대신 헬맷을 머리에 얹고 탈것에 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오래도록 예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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