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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01. 2023

골프 치기 좋은 날

 엄마가 족발 삶아놨다고 애들을 데려오랬다. 그놈의 족발은 좀 밖에서 포장해다가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육가공 공장에서 3만 원어치 사면 가겟집에서 10만 원어치 사 먹는 것보다도 양이 많다고 연신 삶아댔다. 엄만 지금쯤 스티로폼으로 된 앉은뱅이 의자를 불 앞에 두고 쪼그리고 앉아서 눈을 비비며 가마솥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니 좀 답답했다. 내 탓 같았다.


 요샌 내가 술을 안 하다시피 해서 아버지의 즐거움이 하나 사라졌다. 주말에 아들이랑 한 잔씩 걸치며 고기도 씹고 사람도 씹고 하는 낙으로 사셨는데, 내가 자꾸 빼니까 소주가 한가득이던 식탁 옆 작은 냉장고 하나는 빈털터리 신세다. 비닐에 아무렇게나 담은 애먼 쌈채소만 처연하게 뒹굴고 있었다. 엄마가 삶은 족발을 접시 가득 썰어 내고, 나는 집에서 가져온 맵게 양념한 닭내장을 양배추, 대파 넣어 볶았다. 영락없는 안준데. 식탁을 보는 아버지의 눈이 유난히 쓸쓸했다. 얼마 안 남은 아버지 생신 즈음해선 좋은 술 한병 가져와야지 생각했다.

 엄마가 밥 먹다 꺼낸 말이 아버지가 다음 주부터 다시 일을 나간다고 했다. 수년간 해오던 임도관리원 일은 올해엔 따내질 못했단다. 먹고살기 힘드니 그것도 점점 경쟁이 심해지는 모양이었다. 대신 어디 공기업 소속으로 식품 납품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새벽 6시부터 아침 9시 반까지 매일 무언가를 실어다 나르는 일이었다.

 힘써야 되는 일 아니에요? 몸 조심하세요 아부지. 주워섬기니 아버지는 대답 없이 족발만 씹어 넘겼다. 부모님 나이 칠순 즈음해선 내 덕으로 용돈이나 받으면서 가끔 심심풀이로 소일하며 지내시게 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농담도 자주 했었다. 일종의 상황극처럼,

 엄마. 말하며 내가 수화기를 드는 시늉을 하면,

 응, 아들. 엄마가 그걸 또 받았다.

 박스로 돈 보낸 거 아래 거부터 써요. 다 썩어.

 알았어. 근데 어떤 박스가 제일 오래됐지? 통 모르겠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상상만으로도 신이 나서 깔깔대다 대화가 멎었다. 그런 농을 안 한지도 꽤 오래됐다. 나는 미안한 맘이 들어서 그렇고, 엄마는 농담으로나마 부담주기 싫어서 그랬으리라. 현실이 팍팍해서 위트가 사라진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아버지는 별말 없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소파로 돌아가서 핸드폰 속 작은 세상에 빠져들었다. 요새 밥 먹는 때 말고는 늘 그 자리에서 유튜브만 본다.


 평일 아침이었다. 도시 외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이십 여분쯤 달리니 널찍한 주차장이 나타났다. 수 억을 호가하는 외제차들이 즐비했다. 차문을 열고 내리는 사람들에게서 어쩐지 귀티가 난다고 느꼈다. 말쑥한 골프웨어 차림에 잘 빠진 몸매, 젊으나 나이 먹으나 여유로운 표정이라 별세계에 사는 것만 같았다. 밤샌 다음 날 아침에 꼬질해져서 덜덜거리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한 우리가 화려한 화폭 속에 누군가 실수로 물감을 튀겨 놓은 자국 같다고 생각했다. 골프가방을 멘 사람들 사이로 덜컹거리며 바퀴 달린 들것을 끌고 가려니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괜히 더 속도를 내어 신고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환자는 올해로 일흔이 되었다. 모 회사의 이사님 중 한 분을 모시고 이곳 골프장을 찾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요즘은 여행사가 기사를 배정해서 손님을 필드에 모시고 오는 서비스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는 두 달 전인가 뇌졸중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이번에도 어지럼증과 함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신고한 것이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 아, 아휴. 아휴.

 저희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휴. 아휴.

 김치. 웃어보실래요? 제 손 꽉 잡아 보세요. 웃는 모양에서 비대칭이 나타나거나 힘이 빠지는 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말을 하려는데 머릿속에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런 경우엔 더 난감하다. 이상이 있다고 짐작은 하지만 병원에서 응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가만히 두면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처치가 늦어지면 악화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구급차에 환자를 실어 가는 중에 환자가 내 손을 붙잡더니 말을 걸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없었다.

 가야 돼.

 어딜 가요?

 다시 가야 돼.

 어딜?

 아휴. 아휴.

 골프장 말씀하시는 거예요? 묻자, 환자가 그렇다는 표시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골프장에 돌아가서 다시 손님을 모시고 갈 심산인 게 빤했다. 안 돼요. 딱 잘라 거절했다.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앞서 말한 일전에도 뇌졸중 증상이 있었다는 것이며 손님을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 등은 전부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다. 환자는 민망한지 아들과 통화하는 내내 자꾸 눈을 피했다. 그리고 예의 아휴, 아휴만 뱉었다.

 아드님, 아버님이 평소랑 다른가요?

 네. 많이 달라요.

 저희 지금 OO병원으로 가는 중이에요. 오실 건가요?

 가야죠. OO병원 맞죠?

 네.

 아들은 눈이 크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상통화에서 주변에 사람이 지나는 걸로 보아 회사에서 한참 일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주저리주저리 핑계 대지 않고 제 아버지한테 곧장 온다는 말에 내가 되려 고마웠다. 당신 아들도 나처럼 늘그막에 일해야 하는 아버지한테 미안한 마음일까. 효도는 못해도 손이라도 좀 거들어드리고 싶은데, 내 앞가림만으로도 매일이 숨이 차는 그런 기분일까.


 병원 가는 동안 말 없는 도로 위로 볕이 한창이었다. 골프 치기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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