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May 03. 2023

슬픔은 치약이다

 아흔이 다 된 할머님을 병원에 모시고 왔다.

 하지 말라니까, 말을 안 들으셔. 나이 칠십이 가까운 그녀의 아들이 함께했다.

 어쩌다 넘어지신 거예요.

 돌나물 캐다가요. 김치 한다고.

 울 엄마도 이맘쯤 마당에 아무렇게나 자란 돌나물을 뜯어다 물김치를 담근다. 모시고 온 할머니처럼 내가 환갑 넘어서까지 김치 담가준다고 할까 봐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뚜렷한 외상도 없고 호흡기 증상도 없어 금방 응급실에 들어가지 싶었다. 요새 몇몇 병원들은 코로나 비롯 감염병에 민감해서 환자를 구급차 안에서 일차적으로 선별하는 경우가 많다. 트리아제(환자 선별) 간호사 선생님이 병원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다른 구급차가 하나 응급실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벌거벗은 채 아랫도리만 가린 남성이 제세동기 패치를 붙이고 들것에 실려 나왔다. 심정지 환자였다.


 원래 부정맥이 있었는데 사우나를 하다가 심장이 멈추었다고 했다. 샥(shock: 전기 충격)을 세 차례 주었고, 현장에서 맥박과 호흡은 돌아왔으나 의식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는 게 환자를 싣고 온 구급대원의 설명이었다. 보조석에서 내린 환자의 아내는 소생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뒤를 따르다가 간호사에게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부터 주저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 여보. 여보. 여보. 여보, 힘내. 여보. 여보. 엄마. 어떡해. 여보, 힘내. 여보. 여보. 하는 걸 한 시간도 넘게, 미어지는 안단테로 반복했다. 주차장이 떠나가도록 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 쳐다봤다. 경비원이 다가와서 이러고 계시면 차 들어와서 위험하다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대기하고 있던 우리 구급차 옆 그늘 밑으로 자리를 옮겨서 또 울었다. 그녀의 언니인가 하는 사람한테 전화가 와서 병원 위치를 알려줄 땐 잠시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직전처럼 곡을 하다가 환자를 싣고 온 구급대원이 보호자의 연락처를 물을 때 번호를 뇌는 잠깐잠깐 울음이 끊기고, 또 이어졌다. 구급차 처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아들은 그걸 온전히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할머니 아들이 몸을 들썩이더니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는 코를 훌쩍이며 손등으로 눈물을 슥슥 훔치고 검버섯이 별자리처럼 새긴 할머니의 손거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아파서 실려온 할머니는 되려 평온했다. 이가 다 빠진 입을 오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 아들이 병원 뒤꼍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는 동안 여자의 울음소리도 멈췄다. 병원을 찾은 그녀의 언니가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일으킬 즈음해선 완전히 멎었다. 우악스럽게 밀어닥친 고요가 어색해서 숨이 막혔다.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삶이던, 죽음이던. 심정지 환자를 싣고 온 구급대는 벌써 자리를 떴다. 환자 하나에 응급실 의료진이 모두 매달려 있어서, 비응급 환자를 데려온 우리만 발을 동동 구르며 처치실에 들어간 아저씨의 소식을 기다렸다. 간호사가 나왔다. 아저씨가 의식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울음을 멈췄던 남자의 아내가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남은 울음을 토했다.


 충분히 슬퍼하면 곧 죽음에 이를 듯 꽉 찬 슬픔도 예외 없이 소모된다. 때가 되면 사들이는 치약처럼, 긴 긴 삶에서 종종 당신에게 날아드는 슬픔의 뭉치들도 그냥 슬퍼하다 보면 언젠가 바닥을 드러낸다.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내 앞에서 곤히 잠든 할머니에겐 남은 이빨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남은 치약도 없었다. 우리도 이빨 다 빠질 때까지 맛난 거 열심히 먹다가 늙어 죽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프 치기 좋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